Skip to content

K-K 이야기

불타는소년2010.08.04 17:46조회 수 6955추천 수 135댓글 18

    • 글자 크기
21세기 분데스 최고의 공격진을 뽑으라고 한다면? 볼프스부르크를 우승으로 이끈 제코-미시모비치-그라피테의 3각 편대나 지난 시즌 바이에른의 로베리(리베리-로벤), 혹은 토니와 클로제의 토나오제 투톱 등 워낙 강한 라인이 많아 쉬이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멘 팬들에게 묻노라면 단연 K-K 투톱을 꼽을 것이다.(물론 본인을 비롯해 많은 브레멘 팬들은 미쿠를 묶어 삼각편대라고 말하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일 뿐더러 어차피 미쿠는 다른 글에서 다룰 것이기에 이 글에서는 언급을 줄인다.)



이게 05-06 챔스 16강 1차전이었던가...


K-K는 독일의 미로슬라프 '미로' 클로제와 크로아티아의 이반 클라스니치를 가리킨다. 두 사람의 성에서 K를 따온 이 투톱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K-K로 불리며 분데스 최고의 콤비로 꼽혔다. 그러나 이들은 단 세 시즌만 함께 했고 실질적으로 가동된 건 고작 두 시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브레멘이란 이름을 들으면 K-K를 떠올린다. 브레멘은 리스테스, 미쿠, 디에구, 외칠로 이어지는 화려한 플레이메이커들을 보유했었으며 에른스트, 바우만, 프링스 등 뛰어난 독일의 국가대표 수미들도 있었다.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은 K-K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인가. 이제 K-K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나 꺼내보려 한다.


클로제는 폴란드 오폴레 출신으로 아버지는 폴란드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였고, 어머니도 대단한 핸드볼 스타였다. 보통 집안에 선수 출신이 있으면 대를 이어서 선수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는 게 대부분의 경우다.(이탈리아의 말디니, 부폰 가문을 떠올려보라.) 그에 반해 클로제가 입단했던 유소년 팀은 7부리그 산하였으며, 14살에는 지역 선발팀 합숙에서 재능이 없다고 하루만에 탈락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20살이 되도록 7부리그에서 뛰었으며 이후 5부리그 팀으로 옮겨가 3부리그까지 올라가기는 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클로제의 7부리그 성공신화가 나온 것이다. 아무튼 클로제에게는 많은 팬들을 자극할 만한 그런 성공 스토리가 있었다. 182cm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금발의 매너남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는데 어찌 인기가 없을 쏜가. 재밌는 것은 클로제의 분데스리가 첫 골이 브레멘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클라스니치는 출발은 그럭저럭 빠른 편이었다. 꽤 이름있는 구단인 장크트 파울리에서 성장했으니 7부리그에서 놀던 클로제보다는 훨씬 앞서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클로제가 5부리그로 옮겨올 무렵 클라스니치는 이미 2부리그에 데뷔했고, 이듬해에 팀의 주전이 되었다. 그렇다고 클라스니치가 성공가도를 밟은 건 결코 아니다. 01-02 시즌에 브레멘으로 이적해서 23경기나 뛰었지만 전형적인 후반 끄트머리에 나오는 후보선수였고, 1골을 넣은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음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후반기를 통으로 날려먹었다. 하부리그에서 이름 좀 날리다가 1부리그에서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그저그런 유망주가 될 뻔 했다. 하지만 03-04 시즌에 클라스니치는 완벽히 정착했고, 그는 이제 주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이상한 배경의 두 남자가 마침내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2004년 여름에 있었다. 클로제는 이미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에서 5골을 넣어서 스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데스리가의 수준급 공격수로 이름을 얻은 상태였다. 클로제의 소속팀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재정 위기에 봉착해 있었는데, 클로제의 이적료 500만 유로 덕분에 파산을 면하게 되었다. 500만 유로가 별 거 아닌 금액으로 여겨지겠지만, 브레멘에게는 모험에 가까운 한 수였다. 500만 유로는 브레멘 팀 이적료 최고 기록이었으며, 이적료도 은행의 융자로 해결했다. 거액을 투자했으니 우려가 따라오는 건 당연한 법이다. 게다가 리가 최고의 미들진을 바탕으로 한 브레멘의 패싱 축구는 카이저슬라우테른의 롱볼에 익숙하던 클로제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았다. 무엇보다 클로제는 01-02 시즌에 16골을 넣었을 뿐 풀타임 4시즌 동안 평균 11골 정도의 평범한 중위팀 에이스였다. 클로제 영입은 분명 위험한 카드였다. 그러나 크르슈타이치와 아이우톤을 샬케로 떠나보낸 브레멘에겐 새로운 선수가 필요했다. 그랬기에 브레멘은 클로제 영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렇게 기대와 우려 속에서 시작된 첫시즌의 K-K 투톱은 꽤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클로제는 15득점(5위) 10도움(6위) 3,11(공격수 1위)을 기록했고, 클라스니치는 10득점(19위) 8도움(9위) 3,44(공격수 7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브레멘 팬들에게 이 시즌은 최악의 시즌 중 하나였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리옹을 상대로 도합 2-10으로 패한 결과는 팀이 유럽대회에서 기록한 패배 중에서도 최악의 참패였다.(아무리 경기내용이 좋았던들 결국엔 스코어만 남으니 말이다) 리그 성적도 3위였고, DFB-포칼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4강에서 승부차기로 패했지만, 레버쿠젠을 만난 것을 제외하곤 대진이 너무 좋았다. 트리어, 바이에른 2군을 상대로 진출하지 못하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K-K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03-04 시즌의 아이우톤은 리그에서만 28골을 기록했기 때문에 상대적인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 시즌은 최초의 미드필더 득점왕인 민탈과 엄청난 스탯을 쌓은 마카이가 있었다.(민탈은 24득점으로 득점왕이었으며, 마카이는 평점은 공격수 11위에 그쳤지만 22득점 14도움으로 득점 2위와 도움왕, 그리고 공격포인트 1위를 차지했다.) 결국 04-05 시즌의 K-K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되 그렇게 임팩트 있는 시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K-K는 어떻게 전설이 되었는가? 바로 두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이라 할 수 있는 05-06 시즌이었다. 클로제는 26경기 25득점 16도움 2,38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그 유명한 7관왕에 올랐으며(득점왕, 도움왕, 공격포인트, 공격수 평점, 전체 평점, EDT, MDT. 여기에 월드컵 득점왕과 독일 올해의선수까지 합하면 9관왕이다.) 클라스니치도 15득점(6위) 7도움을 기록하며 공격포인트 6위에 올랐고 비록 격차는 제법 있지만 3,25의 평점으로 공격수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이끈 브레멘의 공격력은 최고 수준이었고, 이들의 공격과정은 그림과도 같았다. 바우만이 공을 빼앗아 보로프스키와 프링스가 앞으로 건네주면 미쿠가 마법을 부리고 K-K가 끝장을 냈다. 브레멘은 이탈리아의 제왕 유벤투스를 상대로 엄청난 혈투를 벌였으며(끝나기 3분 전쯤 나온 골로 인해 유벤투스가 원정골 우선 규정으로 진출했다.) 리가에서는 경이적인 득점력으로 득점 1위와 준우승을 차지했다.(6득점이 3번, 5득점이 4번 있었다.) 물론 기복이 매우 심했으며, 형편없는 수비력으로 계속해서 위험을 맞아야만 했다. 심지어 3부리그 장크트 파울리에게 DFB-포칼 3라운드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즌에 보여준 브레멘의 진정한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주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패스 속에서 피어나는 골들은 예술이라 할 수 있었다. 브레멘을 이끄는 K-K는 그야말로 유럽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브레멘의 극단적인 공격은 혼자서 미드필더를 지워버리던 주장 바우만의 놀라운 수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닳아가고 있었다. 보로프스키는 부상으로 기복이 심해지고 있었고, 미쿠는 프랑스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K-K가 건재한다 한들 05-06 시즌의 모습을 재현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K-K도 부서졌다. 이미 클로제는 몇 차례의 부상으로 고생했으며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클라스니치의 몰락만큼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며 클라스니치가 건재했다면 K-K의 붕괴도 없었을 것이다. 06-07 시즌 초반 클라스니치의 경기력은 끔찍했고, 클로제 혼자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누구도 클라스니치의 부진을 설명하지 못했고 많은 이들은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하며 다시금 K-K 투톱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클라스니치에게 신장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모든 것은 꿈이 되어버렸다. 2007년 1월에 수술을 받았지만 성공은 커녕 거부반응을 일으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결국 재수술 끝에 목숨을 건지고 선수 생활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에게 과거의 모습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실망스러웠던 06-07 시즌이 끝났고, 클로제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브레멘 팬들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06-07 시즌 함부르크전 K-K


K-K 투톱은 스타가 되는 과정 자체가 매우 특별했다. 클로제는 7부리그 출신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신화를 썼으며, 클라스니치는 만인의 비난을 받는 선수에서 만인의 칭찬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결성하자마자 팬들에게 계속해서 즐거움을 선사했고, 두번째 시즌은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단지 스탯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주었고 축구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불꽃처럼 사라져버렸다. 원래 순간의 영화와 비극적인 결말이 함께 한다면 더욱 아름다워보이고 더욱 기억에 남는 법이다. K-K 투톱은 시작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했고, 인기를 끌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었다.


나에게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다시는 브레멘 유니폼을 입을 일이 없음은 물론이요, 팀 관계자로 합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클로제는 이적과정에서 불법접촉을 해 팬들의 분노를 샀으며 팬들은 악성 루머를 유포하며 그와 척을 지고 말았다. 클라스니치는 수술이 끝난 뒤 1년 재계약을 맺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듬해에 떠났으며, 후에 의료진이 빨리 증세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팀을 고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도 브레멘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을까? 그들은 브레멘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들이 브레멘의 레전드라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인가?


클로제는 이제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 클라스니치는 이제 30대가 되었지만, 그 병력으로 인해 오래 선수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두 사람 다 3년이면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뛰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다시 만나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도 좋다, 아니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좋다. 적어도 이들의 플레이를 조금 더, 단지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뭐 그냥 분매 초창기에 열광하던 선수들 얘기를 조금씩 써볼까 하는데... 제일 많이 봤고 제일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K-K부터 써봤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은 미쿠를 다룰 생각입니다. 다른 팀 팬분들이 괜찮아 하시면 에베 산이라던가 이런 레전드들도 다뤄볼까 하고요.

아 근데 인브옹. 이용 수칙은 한 페이지 4개 초과 금지니까 4개까지는 되는 거죠? 굽신굽신
    • 글자 크기
10/11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전반기 리뷰 (by 이병장) VfB 악순환의 근본적 이유 (by srv)

댓글 달기

댓글 18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무료 인터넷 중계 보는 방법 (Ver. 2013.01.27)(by 파이) + 분데스리가 용어 해설(by raute)28 파이 2009.08.16 46394
공지 스폐셜 리포트-칼럼 게시판입니다2 구름의저편 2005.10.12 9825
K-K 이야기18 불타는소년 2010.08.04 6955
19 VfB 악순환의 근본적 이유18 srv 2010.10.20 8050
18 10/11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전반기 리뷰6 이병장 2011.01.03 6881
17 제프 마이어 이후 독일 GK 계보9 Battery Park 2011.04.01 11066
16 VfB 슈투트가르트 10/11 시즌 리뷰 및 11/12 시즌 전망12 srv 2011.08.03 7762
15 바이언의 간단 전반기 돌아보기25 Litz J 2011.12.18 6909
14 11/12 시즌 묀헨글라드바흐 ㄱ부터 ㅎ까지20 불꽃싸다구 2012.05.16 7827
13 독일과 바이언의 4-2-3-124 포동이 2012.06.05 7290
12 현재까지 독일 대표팀에 대한 소감24 srv 2012.06.20 7012
11 선수의 재능과 맞지 않은 전술은 패배를 불러온다.27 angrydog 2012.06.30 8391
10 차범근 리가 308경기 포지션15 F.Baumann 2010.08.09 3940
9 울리 슈틸리케2 Contento 2010.10.05 2602
8 축구에 있어 백넘버란?19 srv 2012.02.23 3128
7 프랑크푸르트, 역대 레전드 11 선정24 Raute 2013.01.24 12052
6 과연 분데스리가는 두 계층으로 되어 있는가?9 용천뱅이 2013.11.01 3942
5 함부르크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13 메롱나라 2014.02.05 4200
4 HSVPlus와 HSV의 미래에 대하여...15 메롱나라 2014.05.27 5996
3 지난 10시즌간 있었던 최악의 영입들21 Raute 2014.09.21 7529
2 독일 칼럼리스트가 지적하는 영국축구의 문제점18 pedagogist 2015.06.08 4549
1 축덕질에 유용한 사이트 소개29 Raute 2015.09.09 18761
첨부 (0)

copyright(c) BUNDESMANIA.com ALL Rights Reserved.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