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69년, 68/69시즌 DFB 포칼 결승전에서 맞붙은 두 팀은 바이언과 샬케였습니다. 바이언은 분데스리가 우승에 이어 더블에 도전하는 상황이었죠. 당시에는 베를린 올림픽경기장에서 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가며 했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경기가 열렸고요.

바이언 최고의 스타는 당연히 프란츠 베켄바우어였고, 샬케 최고의 스타는 스탠 리부다였습니다. 비록 승부조작 때문에 몇 년 뒤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만 당시에는 서독을 대표하는 라이트윙이었고, 스탠이란 이름도 전설적인 잉글랜드의 윙 스탠리 매튜스의 이름에서 따온 거였죠(원래 이름은 라인하르트입니다). 그리고 리부다의 별명은 '베스트팔렌의 왕'이었습니다.

경기 도중 베켄바우어는 리부다에게 태클을 가했지만 깔끔하게 따내는데 실패했고, 지나가려는 리부다의 바지를 붙잡아 멈춰세웁니다. 이후 베켄바우어는 관중들의 야유에 시달리게 됩니다. 열받은 베켄바우어는 관중들과 싸우는 대신 축구로 무력시위를 합니다.

바로 경기 도중에 뜬금없이 저글링을 한 거죠.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격한 야유를 날립니다만 이내 잦아듭니다.

경기는 뮐러가 2골을 넣으며 바이언이 우승했고,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로 더블을 달성한 클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이언의 '카이저' 베켄바우어가 '베스트팔렌의 왕' 리부다를 퇴위시키고, 샬케를 병합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베켄바우어는 '카이저'로 불리게 됩니다.

이 일은 그 유명한 '카이저'란 별명이 나온 계기일 뿐만 아니라 베켄바우어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해서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본 것만 해도 슈피겔과 벨트, SZ가 이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고요. 다만 기사에서는 3-40초 동안 온몸을 통해 묘기를 부렸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움짤에도 나오듯 실제로 묘기를 부린 건 6초 정도였습니다. 혹여나 경기가 끝나고 베켄바우어가 따로 저글링을 했나 확인해봤는데, 이게 다였고요. 뭐 꽤나 거한 과장이 붙은 거죠.

한편 베켄바우어가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프란츠 1세의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은 뒤 '카이저'로 불렸다는 얘기가 있는데, 시기적으로 이 사건이 2년 정도 더 빠르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