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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축구 전술 속 일원론, 그리고 '수비용 미들'에 대한 환상.

Dutchman2014.11.01 18:27조회 수 4640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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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시 4-4-2는 수비와 미들의 이중 저지선을 형성합니다. 미들 라인에 배치될 넷을 보면, 한 명이 볼을 쥔 상대의 플레이 선택을 제한시키기 위해 전진하는 사이 다른 셋은 이하의 공간을 균등하게 점유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죠.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의 미드필더를 논한다면, 다른 무엇을 말함에 앞서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야할 겁니다. 이스코-크로스-모드리치-하메스의 4인 미들이 얼마나 4-4-2 수비의 기본을 체화하고 있느냐가 여기서 드러나니까요. 완벽하진 않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죠.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팀의 수비적 부하를 떠안는 수비 전용 미드필더'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팬덤 내부에서 만연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선수들이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면, 사키의 말마따나 클럽의 구단주나 청소부가 뛰어도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낼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팀 차원에서 이러한 기본 전술이 부재한다면? 말디니 여덟이 뛴다고 해도 답이 없습니다. 사키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밀란의 스타 플레이어를 통제하기 위해 선수 상대로 내기를 걸어, 자기가 지시한대로 움직이는 소수로 다수의 공격을 막아낸 적도 있지요. 당시 공세측은 제대로 볼을 전진시키지도 못했다고 하구요.

보다 가까이, 바로 독일 월드컵 직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캐릭은 킨을 대체할 수 없다는 언론의 비판을 퍼거슨은 그저 긍정합니다. 당시로선 맨유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고 모두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었죠. 시즌이 개막하고 웃던 이들은 모두 침묵하게 됩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선진 알 수 없습니다만 긱스-스콜스-캐릭-날두의 4인 미들이 너무나 잘 돌아가는 겁니다.

참으로 아쉬운 건, 팬덤에선 이를 보고 놀랍다, 퍼거슨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만 많았을 뿐, 정작 그 대단함이 어떻게 성립한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하려드는 이가 많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오랜동안 축구팬인 제게 고민거리였습니다만, 그만큼이나 퍼거슨의 전술적 역량을 낮게 평가하는 이들 역시 곤혹스럽기만 했지요. 전술가라면 가질법한 학구적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두가 중원에서 우위를 위해 양치기에 골몰하거나 피지컬적 우위로 상대의 볼을 쉬이 탈취할 수 있는 미드필더들을 찾아헤매던 게 독일 월드컵 직전까지의 유럽 무대입니다. 그리고 월드컵 직후 갑자기 맨유가 나타나고, 프리미어리그를 3연패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두 번을 거푸 오르구요. 전후의 사정만을 따져봐도 전술적인 설명이 따라붙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려워보이죠.

앞서 이야기한 20년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이요. 플라티니-지레스-페르난데스-티가나의 프랑스, 플라티니-보니에크-타르델리의 유벤투스, 마가트-마테우스-에더의 86 월드컵 서독, 마라도나-부루차가-엔리케-바티스타의 아르헨티나까지 축구에 있어 극단적인 분업 양상이 나타났죠. 그 중 대표성을 띌만한 프랑스를 볼까요? 페르난데스는 후방에서 흐르는 볼을 받아 올려주고, 플라티니는 신나게 벌려주거나 찔러주고, 티가나는 후덜덜한 운동량으로 쓸어담고, 지레스는 측면을 오가며 볼을 전진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키가 등장하여 밀란을 맡고, 모든 것이 달라지죠.

트레블 맨유나 06-08 맨유를 떠올리시면 쉬울 겁니다. 기본적으로 442를 기반에, 하프라인 이하일 경우 수비/미들 두 줄 라인의 존디펜스로 통해 수세 국면을 맞이하죠. 윙으로 유명한 도나도니/긱스/베컴이지만 미들 라인에서 팀의 빌드업 리딩을 주도할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반면 중앙 미들로 잘 알려진 안첼로티/스콜스지만 사이드를 비롯하여 중원 어느 라인에 갖다두어도 자기 존재감을 발휘하며 그 자리에서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수행할 역량이 되거든요. 이건 수비시에도 마찬가지구요.

볼 전진을 막기 위해 윙을 마크하려는 어느 수비가 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정신 차려보니 상대 윙을 따라 어느새 미들 라인까지 딸려나가 있고, 마크했던 윙은 미들마냥 자신을 등진 채 볼을 점유합니다. 그리고 미들인 줄 알고 신경 꺼두었던 놈은 우측면으로 돌아 치고 들어가네요. 마크하고 있던 우군은 자신의 마크 범위를 벗어나니 우왕좌왕입니다. 그리고 본래 윙이었던 적은 우측을 따라 능숙히 벌려주지요. 엄청 정교한 패스는 아닙니다만 교활한 포지셔닝으로 공간이 벌려지니 아주 날카롭게 들어갑니다. 이렇게 수비는 순식간에 바보가 됩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참 대처하기 까다롭지요. 가장 무서운 건, 어느 위치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두루두루 활약할 수 있으니, 선수들간 플레이 선택의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제가 든 예시 속에서 얼마 전 로마와 뮌헨의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전을 떠올릴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설혹 뮌헨에게 기울었던 몇 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아 스코어가 7:1까지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두 팀간의 격차는 확연히 알 수 있던 경기였죠.

이처럼 축구를 개별 국면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단일한 하나의 체계로서 보고, 보아야한다고 주창했던 게 리누스 미셸과 아리고 사키, 요한 크루이프 등의 전술가들입니다. 분업화를 극렬히 반대하는 이들인 만큼, 이름한다면 축구에 있어 일원론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네요. 이들의 축구관은 마켈렐레에 대한 사키의 생각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스페셜리스트라고 했던가요. 우군의 수세 국면, 하프라인 이하에서 마켈렐레가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커버 플레이는 그야말로 역대급입니다. 이미지와 달리 우군의 빌드업 국면에서 활약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요. 수비 라인에게 볼을 받아 미들이나 2선까지 볼을 끌어올려주는 후방 빌드업은 초일류였으니까요. 패스 셀렉션은 볼품 없었습니다만 문제될 건 없죠. 볼 주고 받을 거 없이 그냥 전방압박 뚫고 올라가면 되니까요. 워낙 우월한 운동능력과 이를 잘 살려낼 온더볼 테크닉 사이의 조응이 절묘했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사키는 마켈렐레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외의 모든 영역에선 별다른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이런 선수가 미들 라인에 있고 해당 선수를 중요 축으로 팀을 조탁할 경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공-수와 교차되고 이 둘이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순간 팀 차원에서 플레이 선택의 폭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던 전술가들, 그러니까 분업화를 적극 주장했던 감독들을 우리는 이원론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에레니오 에레라, 트라파토니, 파비오 카펠로 등이 대표적이겠네요. 이들의 축구는 일원론자들의 축구와 달리 다양하고 폭넓은 플레이의 선택지를 갖진 못합니다만, 대신 소수의 패턴이나마 높은 수준으로 이뤄내기 훨씬 용이하죠. 팀의 공격 역량을 집약하는 개인(인테르의 산드로 마쫄라, 유벤투스의 미셸 플라티니, 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이 탁월할 경우 이들에 맞춰주는 것만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장받을 거구요.

물론 대부분의 현역 감독들은 일원론과 이원론 사이를 왔다리갔다리하는 실용노선을 걷습니다. 어디서나 일원론과 이원론을 표방하는 감독은 굉장히 소수구요. 그나마 찾아본다면? 전자야 많은 분들이 염두에 두실 펩 과르디올라겠고... 후자는... 글쎄요, 로베르토 만치니와 라파엘 베니테즈가 좀 가까워보이긴 합니다.

앞서 언급한 퍼거슨의 경우, 시즌 운영을 놓고 본다면 언뜻 실용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팀을 대표할 메인 전술을 짜고 이에 맞게 팀 스쿼드를 조탁해내는 과정은 철저히 일원론자로서 면모를 보입니다. 트레블 맨유의 미들 구성은 사키 밀란 판박이 수준이죠. 킨-레이카르트, 긱스-도나도니, 안첼로티-베컴, 콜롬보-스콜스로 완벽하게 대응됩니다. 06-09 맨유는 킨의 위치를 캐릭이 대신하고, 우군의 빌드업 역량을 집약하는 리더로서 역할은 스콜스가 떠안으며, 공미로서 스콜스에게 기대했던 바는 루니와 함께 찢어갑니다. 펩의 바르샤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었죠. 인혜는 사이드로 돌리고 부스케츠가 캐릭에 대응될 것이며, 레이카르트-킨, 그리고 06-09 맨유의 스콜스와 같이 샤비가 우군의 빌드업 리더로서 활약하는 동시에 공미 롤은 메시가 찢어갔었죠.

정리하자면, '수비 전용 미들'의 필연성은 이원론, 혹은 이원론에 입각한 분업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축구에선 진실될 수 있겠지만, 빌드업 부하를 찢어가며 미들 라인이 떠안을 수비 부하도 이런저런 라인이 골고루 떠맡을 역량이 되는 팀에게 있어선 그저 환상이며 허구란 겁니다. 물론 철두철미하게 일원론에 입각한 팀이 되기 위해선 스쿼드를 구성하는 선수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부분이 상당하겠지만요.

그리하여 레알의 성패는, 사이드의 이스코-하메스가 미들로서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좌우하리라 봅니다.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존 디펜스가 관건이겠죠. 뭐, 크로스-모드리치, 특히 크로스가 간혹 보여주는 멍때리는 모습을 얼마나 안 보여주느냐도 큰 부분일테지만, 선수 하나가 실책을 하더라도 이를 미들 라인 내에서 감당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먼저 이야기한대로, 상당한 수준이긴 하지만 완벽하다고 평하긴 일러 보입니다. 당장은 페페-라모스-카르바할의 출중한 개인 기량에 힘입어 수비시 미들 라인의 위기를 모면하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외줄타기인 감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남은 레알 마드리드의 14-15시즌 일정이 기대되는 이유일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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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와 잘 읽었습니다. 늅늅인 저로서는 뭐라고 딱히 코멘트하기 어렵지만 굉장한 분석 같아요.
  • 전 반반일려나요 ㅋㅋ

    일원론자이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는 전술을 선호하니까요

    수비'형'미드필더지 수비'용'미드필더가 아니니 다를려나 싶기도 하지만...
  • Dernier님께
    레이카르트, 킨, 캐릭, 부스케츠가 수비용은 아니니까요
  • 어느 정도 홀딩 미드필더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건 동의합니다. 반드시 분업화가 이루어질 필요는 없죠. 애초에 수비란 개인의 역량보다는 조직의 역량으로 기능하는 면이 크기도 하고요. 다만 본문에서 간과하고 있는 건 수비만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없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의 수비 부담을 짊어져주는 선수는 분명히 존재했다는 거죠.

    예를 드신 스콜스-캐릭의 2미들에서 캐릭이 스퍼스 시절만큼 자유로이 움직였냐면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사키의 레이카르트와 크루이프의 펩은 '마켈렐레 같은 수미'는 아니지만 분명히 수비부담을 짊어지는 선수였고 이건 퍼기의 키노 역시 마찬가지고요. 일원론으로 언급된 감독들은 모두 당대 최고수준의 공수겸장 미드필더를 손에 들고 있었단 거죠.

    그래서 '팀의 수비부담을 짊어지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수가 아니라는 의견에는 동의하되 '팀의 공수균형을 맞추고 수비적 희생을 하는 서포터'는 필요하다 봅니다. 혹은 여러 미드필더들이 공격만 잘하는 게 아니라 수비도 같이 잘해야한다 정도? 스콜스의 파트너로 베론이나 리켈메, VDV 같은 선수들이 있었어도 비슷한 축구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림이 잘 안 그려지거든요. 중앙 2미들뿐만 아니라 양 사이드의 조력도 필수고요. 데니우손이나 레코바 같은 윙을 데리고 저런 플레이가 가능했을지는 모르겠네요. 덧붙여 엘 클라시코는 안첼로티가 판을 잘 짰지만 엔리케가 바보스러운 실수를 저지른 게 크다고 봐서 미드필더들에 대한 평가는 좀 유보해야한다 봅니다.

    덤으로 본문은 다른 사이트에서 먼저 봤었는데 분매도 잊지 말고 챙겨주세요. 더치맨님이 물어오시는 떡밥은 늘 재밌더라고요.
  • Raute님께
    아무래도 레알 이야기가 메인이다보니 분매에 쓰기 애매해서요. 이것도 올릴지 말지 고민하다 올려서...

    레알에 대한 평은 동의합니다. 사실 양팀의 결정적인 차이는 양 사이드백이고 사이드백만 두 팀이 반대였어도 경기 결과는 바뀌었으리라 봅니다. 다만 바르샤에 대해선 마냥 바보스러운 선택이었는진 모르겠어요. 전반 30분쯤까지 보여준 축구에 올인하는 구도였다는 게 아쉬운 거죠. 물론 그런 축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분명 엔리케 자신의 책임인 만큼 욕이야 먹어야할 거구요.

    그외 말씀하신 부분은 동의합니다. 베컴과 긱스, 스콜스, 킨이 아니라 레코바, 델피에로, 토티, 지단 같은 선수들이었다면 트레블 맨유는 불가능했겠죠. 다만 뭐 선수 역량에 대한 것이라면 본문에서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이드와 미들 사이의 빌드업 역량에 초점을 맞추긴 했는데, 미들로서 역량을 이야기할 땐 당연히 존디펜스를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빌드업 국면에서 자기 기량을 펼쳐낼 수 있는 선수라는 전제가 깔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페드로와 베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고요. 따라서 이스코와 하메스의 미들로서 역량이 관건이라는 말 역시 철저히 수비 문제에 방점이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수비 문제로 말을 시작했던 게 이런 이유였구요.

    그리고 말씀하신 레이카르트나 킨, 레돈도가 수비 부담을 지긴 했지만(센터백으로 뛰던 시기, 혹은 카펠로 시절 레이카르트를 제외하곤) 다른 미드필더 자원에 비해 질적으로 차이가 나진 않았거든요. 안첼로티, 콜롬보, 베컴, 카랑뵈 등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러하구요. 물론 모든 선수들에게 이러한 것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만, 감독의 의도 하에 이 선수들을 그러모을 순 있고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요. 전 이 부분을 강조한 겁니다
  • Dutchman님께
    이제는 골키퍼에게조차 활동량과 패스를 요구하는 시대다보니 수비력보다 공격력을 기준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배치하는 경우가 꽤 늘었죠. 윙으로 실패한 선수를 윙백으로 쓰거나 촉망받는 플레이메이커가 후방으로 내려오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고요. 덕분에 수비에 대한 기본기와 경험치가 아쉬운 선수들이 늘어났고 수비력이 '구려보이는' 경우가 많이 늘어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팬덤의 반응은 '전술로 커버하자'보다는 '수비 잘하는 선수로 때우자'가 되는 거 같고요. 사실 훈련이나 경기 중 선수 개인의 움직임 전체영상을 구할 수가 없는 일개 팬 입장에서 전술적인 조합 문제를 구상하고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아마추어가 아니겠죠.

    중미와 수미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 시점에서 팬들이 말하는 '전용 수미'는 '수비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중미 말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가 싶긴 합니다. 마케렐레는 그냥 전설인 거고 요새는 중미-BTB, 수미-레지스타 or 홀딩으로 인식하고 저런 유형이 필요하다고 고정되는 느낌? 이건 아마 FM의 영향이 크겠죠. 어쨌든 공격력을 위해 수비력을 포기하는 현상이 계속되다보니 그걸 상쇄시켜줄 수비력이 필요하고, 그걸 본직으로 삼는 수비형 미드필더에 목마름을 겪는 것처럼 보입니다.

    레알 얘기를 해보면 기대했던 거 이상으로 크로스와 모드리치의 조합이 괜찮게 굴러가고 있긴 한데 레알을 두고 '전문 수미가 필요하다'라고 했던 건 오히려 꽤나 합리적인 주장이었다고 봅니다. 저 '일원화된 축구'는 구현하기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4-4-2와 중원 2미들이 한동안 외면당하기도 했었고요. 4-4-2는 정말 매력적인 전술이지만 현대축구에서는 제대로 쓰기가 더럽게 까다롭고 까닥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싸먹힐 우려도 있죠. 매시즌 우승을 해야하는 레알이 상대할 팀들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어설픈 4-4-2로는 망신당할 게 뻔하고요. 게다가 크로스는 2미들로 몇경기쯤은 그럭저럭 잘 뛰었을지 몰라도 시즌 단위로 검증받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결국 돌고 도는 거긴 한데 저 일원론을 현재의 레알에서 추구할 수 있을지도 긴가민가하고, 시도해본다 한들 크로스나 모드리치가 현재 요구되는 4-4-2의 존 디펜스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만큼 수비력이 괜찮은지도 의문이었고요(사견으로 모드리치는 몰라도 크로스는 힘들 거라고 봤고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공미로 써야될 선수인 크로스를 이미 공미 출신의 모드리치와 섞는다는 건 밸런스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언급했던 것처럼 수미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는 (팬덤의) 시대정신이 맞물려서 '전용 수미'에 대한 환상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들은 마케렐레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수비형 미드필더 찾고 있는 거죠. 그게 무슨 비에이라 같은 먼치킨을 요구해서 황당한 거지만...

    그리고 분매라고 독일 얘기만 하고 그러진 않아요. 전에는 EPL 또 주말예능 한다고 실시간 불판 세워진 적도 있어요. =ㅅ=;;;
  • Raute님께
    플메가 후방으로 내려오는 것이든 윙과 사이드백 사이의 호환이 전에 비해 자유로운 것이든 전 반대로 분업화에서 점점 벗어나려는 흐름으로 보이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죄다 일원론으로 통합되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구요. 돌고 도는 거라기보단, 어느 시기든 가장 높은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는 팀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게 맞겠죠.

    음, 제가 말한 수비용 미들이 수비형 미들, 홀딩과 다른 맥락이란 건 아실 겁니다. 전 홀딩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맥락에서, 전 다른 글을 통해 데샹이나 부스케츠와 같이 후방 빌드업을 주도적으로 맡고, 이 부분에서 제 역량을 압도적으로 발휘할 선수들이 존재감이 없다는 이유로 저평가하는 걸 반대하기도 했구요. 정확히 말하면 해당 영역에 분명 존재하고, 미들 라인 내에서 이를 해결해줘야한다는 거죠.

    이스코-크로스-모드리치-하메스의 경우 그들 개개인의 수비 능력이 딱히 긱스-스콜스-캐릭-날두보다 떨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설혹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저들이 한 걸 구현 못할 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구요.

    크로스의 수비 문제라면 전술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보구요. 만약 선수가 후방에서 볼을 쥐었을 때 선택할 플레이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심각한 문제가 되겠죠. 센터백들이 미들과 호환이 엄청 안 좋은 게 이러한 이유구요. 수비 잘하라고 올려놨더니, 커버 플레이야 그럭저럭할지언정 부정확한 패스와 빌드업 국면을 끊어먹는 플레이를 통해 커버할 상황을 더 많이 만드니까요. 허나 크로스의 경우 지난시즌에 이미 이러한 문제가 크게 없음을 보였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면 수세 국면에서 존 디펜스를 구성할 1인으로서 역량이 되느냐인데 딱히 이조차 하기 어려우리라 보진 않습니다. 물론 중앙 미들로서 수세시 포지셔닝이 있겠고, 실제로 해당 부분에서 문제를 노출하긴 합니다만 이건 선수가 체화해나갈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브레시아 시절 이전까지 피를로는 세컨탑과 공미를 오갔고, 알론소는 테크니컬한 중앙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둘 모두 포백 라인 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하는데 어떤 문제도 없었으며, 알론소는 스트렝스의 우위 덕에 수비 전술의 메인 축도 가능할 정도였죠. 이 둘이 선수 생활했던 팀이 지금의 레알과 다르고, 따라서 레알에 수비적인 부하를 감당할 선수가 필요하리라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공미와 세컨탑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스콜스가 있는 걸요. 그리고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 변화를 하여 빌드업 리더로서 로이 킨의 대체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음을 보였죠. 크로스가 이 선수들보다 안 좋은 상황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리고 모드리치는 중앙 미드필더라고 보는 게 맞죠. 토트넘 시절부터 공미에서 뛴 적은 극히 드문 게 모드리치입니다. 플레이한 몇 안 되는 경기에서도 제 역량을 변변히 발휘하지 못했구요. 포워드와 2선을 넘나들며 킬패스를 통해서든 슛팅을 통해서든 직접 상대 수비 라인을 직접 타격하는 찬스메이커로서 활약은 언제나 아쉬움이 있었으니까요. 차라리 2선으로 뛴다면 공미가 아니라 레프트 윙으로 뛸 때 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습니다. 온더볼이 괜찮고 킥 테크닉이 좋은 데다 리딩 마인드도 있으니까요.

    물론 크로스가 12-13 전반기 바이언에서처럼, 모드리치는 토트넘 시절처럼 자신의 영향력으로 경기를 좌우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뭐, 반드시 서로서로 사이의 합이 120% 맞물려야 성공하는 팀이 되리라 생각하진 않아서요. 사실 맨유에서도 루니-테베즈-날두 사이의 플레이간 호응이 그렇게까지 잘 맞아떨어지진 않았죠. 그래도 해당 조합은 07-08시즌 리그/챔스 더블을 이뤄내지 않았습니까.

    모든 경우 해당되는 이야긴 아니겠습니다만, 대개 전 선수란 쓰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첼시에선 후덜덜한 운동량으로 상대 미들 라인에 대한 커버 플레이를 주로 맡고, 빌드업 국면에서 영향력은 (간혹 임팩트 있는 슛팅이나 드리블 돌파를 제외하곤)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던 에시앙입니다. 이것만 보면 전형적인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피아, 문타리와 함께 이뤘던 가나의 3미들 라인은 상당한 수준의 협업 플레이를 구현해냈습니다. 에시앙이 다비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 Dutchman님께
    네 저런 포지션 변경이 분업화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라는 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 얘기를 꺼낸 건 '시스템으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선수의 수비력에 대한 고민 없이 기용하는 모양새가 많은데 덕분에 전술로 커버하지 못할 때 수비 문제가 심화되면서 '수비 스페셜리스트'에 대한 필요성을 팬들이 느끼는 게 아닌가...라는 의미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백미가 '공미를 중미에 박지 말고 수미를 중미에 박자'라는 식으로 전개되어서 수미 만능론이랄지 스페셜한 수미가 꼭 필요하다는 식으로 발전한 거 같다는 의미였고요. 경기 보면서 쓰느라 제가 매끄럽지 못하게 글을 썼네요.

    제가 레알의 4미들에 회의를 갖는 건 저 친구들의 수비력이 2선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모드리치는 논외로 하고요) 수비가담을 훨씬 많이 요구받는 미드필더로서는 아직 햇병아리라고 보기에 현재 레알이 상대해야 하는 수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을까? 라는 점입니다. 요새 기세가 정말 좋지만 시스템의 덕을 보고 있는 듯한데다 아직 전반기에 불과하고, 전반기에 잘 나가던 팀이 겨울에 분석당하고 후반기에 탈탈 털리는 건 멀리 갈 거 없이 지난 시즌 펩 바이언이 그랬으니까요. 저 성공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카드는 역시 크로스일텐데 더치맨님께서 예를 드신 피를로나 알론소 등의 사례로 충분히 성공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내심 찜찜하긴 해요. 뢰브가 못 쓴 걸 수도 있지만 포지션을 막론하고 크로스가 나치오날엘프에서 보여줬던 수비력은 음... 저 친구는 무조건 공미 써야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거든요. 이건 제가 너무 크로스를 과소평가하는 걸수도 있겠죠.

    끝으로 에시앙은 그냥 무리뉴가 비에이라를 마케렐레로 쓰면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나 3미들은 네임밸류는 좀 떨어질지 몰라도 분명 매력적인 팀이었죠. 요새 이름값만 좋은 코트디부아르 미드필드 생각해보면 어휴... 나이지리아만 가면 날아다니는 미켈도 생각나긴 하는데 이 친구는 클래스가 좀 떨어져보이긴 하네요. 좋은 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 Raute님께
    동의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거구요. 크로스는 개인의 문제가 크기보단 다른 동료들이 커버쳐줘야한다고 보는데 그 이스코와 하메스가 미지수이니... 엘클의 승리로 확답하긴 이르다보고 올시즌을 계속 지켜봐야할 거 같아요.

    저도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 Raute님께

    저도 이부분에 대해서는 더치맨님 의견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분명 대인마크에 약점이 있는 선수이지만 요즈음 공간을 커버하는 수비에는 무난히 적응해주고 있는 모습이거든요.
    뢰브와 안체로티 뿐 아니라 크로스를 후방에 두기 시작한 것은 과르디올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 시대 최고의 명장 세사람이 크로스를 중앙 미드필더 내지는 레지스타로 두고 싶어했던 거지요.

    무엇보다 안첼로티가 크로스를 2미들에서 활용하는 방식은 재미있습니다.
    크로스는 압박이나 태클링은 준수한 편인데 민첩성이 떨어져서
    스피드를 살린 드리블을 저지하거나 볼을 인터셉트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편이거든요.
    그래서인지 크로스의 풍부한 활동량을 적극 활용하는 느낌이에요.

    크로스가 압박을 해서 상대 공격의 선택지를 줄이고 재바른 모드리치나 이스코가 끊어먹는 형태의 수비를 하고 있습니다.
    라모스나 페페처럼 운동능력이 탁월한 센터백이 보좌해주는 것도 있구요.

    저는 꽤나 성공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 그리고 기본적으로 수비적으로 살짝 허술한 중앙 미드필더를 커버하는 것보다
    포백 앞에서 볼을 적절히 받아주고 피딩해주는 홀딩 미드필더의 부족한 역량을 커버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수비적으로도 오히려 불안해지기 십상이구요..

    특히 볼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은 강팀일수록 공격시 후방에서의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알에서는 모드리치도.. 이야라멘디도 케디라도 이걸 못했거든요.
    오직 알론소와 크로스만 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토니는 월드컵도 풀로 뛰고와서 노예처럼 경기에 나오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대단한거죠. 월드컵 후에 부진한 선수가 태반인데
    리그도 팀도 언어도 달라진 환경과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잘해주고 있으니까요.

    각설하고 요즘처럼 빌드업의 중심축이 내려가고 따라서 전방압박이 성행하는 고리 속에서
    후방 볼 소유의 안정감은 수비면에서도 천금 같은 값어치를 가진다고 보거든요.

    거기다 이런 선수는 잘 없습니다. 수준급의 스트라이커를 찾는 것보다
    레알 마드리드 같은 거대 클럽에 알맞는 홀딩 미드필더를 얻는게 더욱 어려울 정도에요.

    여러모로 토니 크로스는 후방 미드필더로 매력적인 원석처럼 보였을 겁니다.

  • 갠적으론 일원론 쪽에 더 공감이 가는 편입니다. 볼을 빼앗기더라도 안전한 위치가 있고 상당히 위험한 위치가 있는데, 볼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중미는 볼을 빼앗겨선 안되는 위치에서 볼이 탈취되는걸 피하게 해주죠. 당장의 대인수비에선 손해가 있을지언정, 볼을 더욱 전방으로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고, 이 부분으로도 수비적 기여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네요.


    다만, 스페셜리스트를 기용하는 것도 이해는 되는게 상대와의 1:1경합에서 족족 뚫려버리면 결국 잘 짜여진 수비대형도 쉽게 깨져버리게 되죠.
  • 저도 이런 분석 해보고싶네요.. 평론가수준이시라능.
  • 댓글이 너무 늦은거같은데... 그럼 지금 레알 442의 약점이뭘까요??? 흔히 사람들이 강팀상대로 수비적인 미드필더없어서 불안하다는데 막상 리버풀 바르샤전보니 그런것도 들어나지않고... 또 미드필더와 수비수 사이의 간격을 노리라는말도있는데 레얼이 이 라인조절을 너무 잘하던데 어떤 파훼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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