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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로 해보는 발롱도르 다시 선정하기

Raute2015.02.05 02:07조회 수 4287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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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심심해서 해봤습니다. 발롱도르는 개인수상인지라 확실히 타이틀 =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월드컵에 한해서는 대부분 발롱도르로 이어졌고, 어느 정도 타이틀이 있는 선수가 이득을 보긴 했습니다. 반면에 남미 올해의 선수는 정말 개인 활약상을 보고 수상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이런 경향성에 제 주관을 반영해서, 국적제한 없이 뽑아봤습니다. 연도 옆의 이름이 제가 뽑은 수상자, 괄호 안에 있는 인물은 실제 수상자입니다. 유럽은 추춘제, 남미는 춘추제 중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1956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스탠리 매튜스)

은근히 논란이 있던 해입니다. 스탠리 매튜스가 실력으로 받은 게 아니라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 상을 선사했다는 거죠. 디 스테파노는 비록 리그에서 우승을 얻지는 못했지만 득점왕을 차지했고, 첫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에 반해 매튜스는 리그 준우승이 유일했죠. 실제 순위는 디 스테파노가 3점 차이로 2등을 했습니다. 



1957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 스테파노는 16명의 투표자로부터 12장의 1위표를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상. 남미에도 확실한 경쟁자가 없습니다.



1958 - 펠레(레이몽 코파)

17살 소년이 자국리그를 초토화시키고 부상당한 채 월드컵에 참가하더니 첫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이후 토너먼트 3경기에서 6골을 넣습니다. 이걸 만화로 그리면 현실성 없다고 욕먹을 겁니다. 이런 발롱도르 재선정 떡밥에서 팀의 중원을 책임졌던 지지에게 줘야한다는 의견이 꽤 있긴 한데 1958년에 공식경기에서만 75골을 넣은 괴물이 최고가 아니라면 그것도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실제 수상자였던 코파는 16장의 1위표 중 14장을 가져가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국적제한이 아니었으면 펠레가 됐든 지지가 됐든 못 받았을 거라고 봅니다. 13골로 유명한 퐁텐은 고작 1장에 그쳤었고요. 재밌는 게 이때 디 스테파노는 리그-유러피언컵에서 둘 다 우승하고 둘 다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발롱도르에선 5위표 1장조차 못 받았습니다.



1959 - 펠레(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펠레는 이때 단 하나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는데 주리그, 전국리그, 코파아메리카에서 모두 준우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펠레를 고른 건 주리그는 물론 코파아메리카에서 득점왕이었고 최우수선수였으며 친선경기를 합하면 이해에 가장 많은 126골을 넣었습니다. 친선경기가 왜 들어가냐고 물으시는 분이 있으실텐데 1963년 레프 야신이 발롱도르를 수상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게 FA출범 100주년 세계 올스타전이었습니다. 시대의 차이인 거죠. 한편 디 스테파노는 1위표 20장 중 14장이나 받으며 압도적으로 수상하긴 했지만 이때 유러피언컵 우승과 리그 득점왕이 전부였던지라 고민 끝에 펠레로.



1960 - 푸슈카시 페렌츠(루이스 수아레스)

발롱도르 받을만한 선수가 정말 많았던 해입니다. 19명이 투표를 했는데 가장 많은 1위표를 받은 게 5표를 받은 푸슈카시 페렌츠였죠. 실제 수상자였던 수아레스는 4표로 2위였지만 2위표를 많이 받아서 수상을 했었습니다. 이때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하고 인터컨티넨털컵에서 페냐롤까지 꺾은 푸슈카시가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고, 라리가 타이틀을 가져온 수아레스가 받는 게 맞다는 말도 있고, 유로에서 우승한 야신이 받았어야 했다는 말도 있고, 남미라서 언급은 잘 안 되지만 초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집어삼킨 페냐롤의 알베르토 스펜서도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우베 젤러가 포디움에 든것도 이때였죠. 펠레는 경기당 1골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습니다.



1961 - 펠레(오마르 시보리)

펠레가 부활해 주리그와 전국리그를 모두 평정하고 세계투어를 다니면서 유수의 클럽들을 박살내고 다니던 시기입니다. 도합 111골로 커리어 2번째로 100골을 넘겼죠. 당시 1위와 2위는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던 시보리와 수아레스였습니다만 아직 이탈리아 클럽들이 유럽을 주름잡기 이전이었고, 공식대회에서는 인터컨티넨털컵에서 페냐롤이 벤피카를 꺾으며, 비공식으론 펠레와 산투스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남미축구의 강력함을 보여줬던 시기이기에 펠레를 뽑았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달성했던 스펜서가 좀 아쉽긴 한데 당시 펠레가 리베르타도레스에 나갈 수가 없었던 상황인지라 펠레를 꺾은 게 아니었고, 고로 펠레를 뽑았습니다.



1962- 가힌샤(요제프 마조푸스트)

펠레가 월드컵 2번째 경기에서 부상으로 아웃된 뒤 셀레상을 이끌었던 건 가힌샤였습니다. 그러므로 가힌샤를 선택. 흥미로운 게 골기록만 놓고 보면 펠레의 여러 시즌 중 특출나지 않은 해입니다만(공식경기 54골이지만 펠레니까) 많은 남미의 축구원로들과 전문가들은 펠레의 절정으로 1962년을 뽑고는 합니다. 남미 최강으로 군림하던 페냐롤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저지했고(펠레는 결승전은 못 뛰고 재경기였던 3차전에서 2골을 넣었습니다), 그 유명한 벤피카를 상대로 2경기 5골을 넣은 인터컨티넨털컵 우승 등 클럽에서 정점에 올라있었거든요. 그래서 1962년 월드컵 우승에 펠레가 숟가락 얹었다고 하면 축알못이라고 까이게 된 거죠. 펠레가 그것까지 나왔으면 마라도나와 비교조차도 불가능했을 거라나요. 마조푸스트는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끌어서 수상한 케이스고, 에우제비우는 벤피카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서 못 뛰었기 때문에 2위에 그쳤습니다.



1963 - 펠레(레프 야신)

주리그 우승은 놓치지만 전국리그 3연패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 인터컨티넨털컵 2연패를 달성합니다. 실제 수상은 야신이었지만 유럽무대에서 활약한 건 밀란의 지아니 리베라였고 인터컨티넨털컵에서 결국 산투스에게 패하기 때문에 펠레의 아성에는 안된다고 봐서 펠레. 코파 아메리카는 볼리비아가 우승한 대회라...



1964 - 루이스 수아레스(데니스 로)

수아레스는 리그, 유러피언컵, 그리고 유로까지 3관왕을 차지합니다. 1위표는 로와 똑같이 6표를 받았지만 2위표의 차이로 2위에 그쳤었죠. 로는 매튜스 이후 최초로 무관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선수였는데 징계로 1달을 쉬고도 1년간 50골을 넣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었죠. 덕분에 호날두가 무관으로 발롱도르 후보가 되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례로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전 타이틀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수아레스를 뽑았습니다. 펠레는 어디갔냐고요? 펠레를 2위로 놓겠습니다.



1965 - 펠레(에우제비우)

에우제비우도 참 발롱도르와 연이 없던 선수인데 커리어에서 유일한(벤피카의 첫 우승 때 에우제비우는 갓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새내기였습니다) 유러피언컵 우승 때는 월드컵이 겹쳐있었고, 이후 유러피언컵에서 준우승만 연거푸했고, 1966월드컵에서는 맹활약했더니 잉글랜드가 우승을... 덕분에 발롱도르는 이해밖에 못 받았죠. 그런데 저는 이 해의 발롱도르로 펠레를 뽑겠습니다. 똑같이 자국리그는 평정하고 대륙대회에서 우승을 못한 건데 에우제비우는 준우승, 펠레는 4강이었습니다. 대신 에우제비우는 50골을 기록했고 펠레는 70골을 기록했죠.



1966 - 바비 찰턴(바비 찰턴)

굳이 말이 필요할까요. 22장의 1위표 중 12장을 가져갔으며, 그 다음으로 많이 받아간 게 5장에 그친 에우제비우였습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나 바비 무어는 포지션의 한계도 있고 손색이 있었고... 남미는 좀 애매한 게 펠레는 역시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물러나야했으며 클럽에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브라질의 불참, 자국은 지역대회에서 공동우승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차지한 건 페드로 로차를 앞세운 페냐롤이었지만 우루과이라서 월드컵에 나가질 못했고, 무려 17골을 넣었던 다니엘 오네가 역시 월드컵에는 못 나간 선수라...



1967 - 지미 존스톤(알베르트 플로리안)

1967년에 셀틱은 유럽클럽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합니다. 당시 셀틱은 리그에서만 111골을 넣고 유러피언컵에서 18골을 넣고 우승한 화끈한 공격력의 팀이었지만 팀의 주포였던 스티비 챌머스는 두 대회에서 도합 26골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여러 선수들이 활약하던 팀이었고, 윙이라 스탯이 튀지 않았던 존스톤은 3위에 그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블이라는 업적 때문에 저는 존스톤을 고르겠습니다. 알베르트가 활약한 대회는 헝가리 리그와 인터-시티 페어스컵이었고, 시즌 40골 정도만으로 트레블을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한다는 건 우승팀의 에이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보기 때문이거든요. 실제로는 24명의 투표자가 알베르트에게 8표, 찰턴에게 4표, 조지 베스트에게 3표, 존스톤과 베켄바우어, 에우제비우에게 2표를 줬습니다. 한편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라싱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14골을 넣은 노르베르토 라포를 앞세워서 인터컨티넨털컵까지 우승합니다만 자국대회에선 무관이었고, 코파 아메리카의 향방 역시 스타플레이어의 활약으로 끝난 게 아니라 좀 애매합니다.



1968 - 조지 베스트(조지 베스트)

굉장히 애매합니다. 베스트는 이때의 퍼포먼스 덕분에 영국 언론들로부터 역대 10위권의 선수로 평가받곤 하거든요. 정통공격수가 아님에도 30골을 넘겼고, 뮌헨 참사를 이겨낸 맨유의 정상 등극이라는 점 등 축구외적으로도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쉽게 내릴 수가 없네요. 마침 이탈리아가 유로 우승을 했음에도 돋보이는 선수가 없었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요. 오히려 베스트에 근접했던 건 같은 맨유의 찰턴과 유로에서 준우승한 유고슬라비아의 드라간 자지치였습니다. 문제는 남미인데 에스투디안테스를 우승으로 이끈 후안 라몬 베론이 있었고 인터컨티넨털컵에서 맨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68년 베론 영상이라곤 인터컨티넨털컵 편집본밖에 못 찾아서 뭐라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 그리고 펠레를 깜박했는데 이해에 인터컨티넨털컵 우승팀들끼리 모아놓은 슈퍼컵에서 산투스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국내에는 베스트가 반박불가능한 최고의 선수였던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만 막상 또 그렇게 보긴 어려운 때입니다.



1969 - 지아니 리베라(지아니 리베라)

무척 흥미로운 때인데 1위인 리베라와 2위 루이지 리바의 점수는 단 4점차이였습니다. 그러나 1위표는 14장과 10장으로 4장이나 차이가 났죠. 리베라가 1위표 위주로 받았던데 반해 리바는 2위표와 3위표도 좀 받았다는 소리입니다. 당시 칼리아리를 이끌로 리그 준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했던 리바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일텐데 기존 발롱도르인 리베라 가겠습니다. 인터컨티넨털컵은 에스투디안테스가 올라왔는데 이걸 밀란이 이기거든요.



1970 - 펠레(게르트 뮐러)

생략합니다.



1971 - 요한 크루이프(요한 크루이프)

26장의 1위표 중 19장을 가져갔습니다. 유럽에선 후보를 찾을 수가 없고, 남미를 봐야하는데 토스탕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을 제패했던 크루이프에 비해 돋보이는 타이틀이 없어서 그냥 크루이프 하겠습니다.



1972 - 프란츠 베켄바우어(프란츠 베켄바우어)

이 해에 크루이프는 트레블을 달성했고 퍼포먼스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베켄바우어는 유로1972를 가져갔고 독일 역대 최고의 팀으로 꼽힙니다. 당시 투표 내역도 독일의 세 선수들이 쓸어갔고 크루이프는 1위표 3장에 그쳤죠. 그러므로 베켄바우어. 남미에서는 테오필로 쿠비야스와 펠레가 있는데 유로 때문에 베켄바우어.



1973 - 요한 크루이프(요한 크루이프)

아약스는 레알마드리드에 이어 2번째로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한 팀이 되며, 이 시즌이 끝나고 크루이프의 주장 박탈사건이 일어나면서 바르셀로나 이적이 이뤄집니다. 이 여파로 '아약스의 12사도'가 해체되었고, 아약스의 전성기가 끝나죠. 크루이프는 24장의 1위표 중 15장을 가져갔습니다. 남미에서는 아직도 늙지 않은 펠레가 있습니다만 그냥 크루이프 할게요.



1974 - 프란츠 베켄바우어(요한 크루이프)

베켄바우어는 발롱도르 2위에 그치자 '내가 뭘 더 해야 하느냐'라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리그에 유러피언컵에 월드컵까지 우승한 선수에게 발롱도르를 안 준다는 건 너무하다고 봅니다. 크루이프가 베켄바우어보다 1위표를 5장이나 더 가져가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제 관점에는 그렇습니다.



1975 - 올레흐 블로힌(올레흐 블로힌)

이때 블로힌은 26장의 1위표 중 무려 20장을 가져갔습니다. 엘리아스 피게로아는 리그에서의 활약만으로 남미 최고의 선수로 뽑힙니다만 보통 해외에서는 블로힌으로 가더군요.



1976 - 프란츠 베켄바우어(프란츠 베켄바우어)

베켄바우어는 유로에서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분명히 유로76 최고의 선수였고, 클럽에서는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냈습니다. 역시나 피게로아보다는 베켄바우어로 가는데 이게 유럽의 영향이 커져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게 타당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피게로아를 배제하는 건 제가 피게로아의 플레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1977 - 지쿠(알란 시몬센)

이 시기에 시몬센은 케빈 키건보다 1위표가 4장 적지만 하위 득표수에서 앞서 아슬아슬하게 발롱도르 수상자가 됩니다. 그런데 지쿠는 당시 남미를 씹어먹고 있었죠. 그러므로 지쿠.



1978 - 마리오 켐페스(케빈 키건)

저시기 언론기사를 구해볼 수 있으면 꼭 뒤져보고 싶은 해입니다. 월드컵에 나가지도 못했던 키건이 한스 크란클과 롭 렌센브링크를 제치고 1위라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거든요. 역대 최악의 월드컵으로 꼽히는 78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월드컵이 있던 해에 월드컵에서 아무것도 못한 선수가 발롱도르를 받아간 최초의 케이스입니다. 국적제한 없었으면 아무리 그래도 월드컵 우승이니까 켐페스가 받았겠죠.



1979 - 케빈 키건(케빈 키건)

키건은 78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18장이라는 압도적인 득표수로 발롱도르 2연패에 성공합니다. 지쿠나 마라도나를 넣기도 하는데 타이틀 문제 때문에 그냥 키건 하겠습니다.



1980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루메니게는 당시 독일을 유로1980 우승으로 이끌었고 25장의 1위표 중 24장을 받았습니다. 역대 발롱도르 최다 득표율입니다. 이때 마라도나를 꼽는 사람도 있긴 한데 저 엄청난 득표율 때문에라도 못 고르겠더군요. 물론 1980년의 마라도나는 괴물입니다. 보통 보카의 슈퍼스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퍼포먼스로는 아르헨티노스 시절이 더 대단했다고 보는 의견도 꽤 있어요. 저도 아르헨티노스 시절 경기가 더 무섭게 느껴지더군요.



1981 - 지쿠(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루메니게는 전년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17표나 얻으며 발롱도르 2연패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쿠를 골랐는데, 이 1981년의 지쿠는 플라멩구를 이끌고 남미를 뒤흔들었기 때문이죠. 자막 없어서 불편하긴 한데 저 당시의 플라멩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위상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이 됩니다. 인터컨티넨털컵에서 우승한 것도 플라멩구였죠.



1982 - 파올로 로시(파올로 로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1983 - 지쿠(미셸 플라티니)

지쿠의 마지막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즌. 플라티니를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 상을 받은 게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나 우디네세 이적 후 플라티니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 타이틀을 놓치게 됩니다. 우디네세에서 첫시즌에 리그에서만 24경기 19골을 넣었다는 게 함정입니다만. 지쿠가 있었다한들 플라티니가 발롱도르였을 거란 얘기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전 지쿠에 한 표를.



1984 - 미셸 플라티니(미셸 플라티니)

이해에 굳이 딴지를 걸자면 플라티니가 만장일치가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26장 중 2표나 잃었거든요.



1985 - 미셸 플라티니(미셸 플라티니)

아직까지는 플라티니가 확고하게 유럽 넘버원이던 시기입니다. 지쿠와 마라도나가 떠난 남미에는 엔초 프란체스콜리가 떠올랐지만 그래도 플라티니의 아성에는 부족하지 않나 싶네요.



1986 - 디에고 마라도나(이고르 벨라노프)

생략합니다.



1987 - 뤼트 굴리트(뤼트 굴리트)

마라도나의 세리에A에서의 지배력에 대해 가장 논란이 일어나는 부분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마라도나가 정말 시대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면 이 시기에 월드사커에서라도 수상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압도적으로 굴리트가 상을 가져갔거든요. 87년의 굴리트가 받은 지지는 86년의 마라도나보다 높습니다.



1988 - 마르코 판 바스텐(마르코 판 바스텐)

이해에 PSV가 트레블을 하긴 했습니다만 유로1988 우승으로 인해 판 바스텐이 가져갑니다. 발롱도르는 당연히 압도적이었고 약 20년간 월드사커 최고 득표율이었죠. 재밌는 게 이때 판 바스텐은 87/88시즌은 부상으로 거의 날렸던 상태라는 겁니다. 사실상 유로 우승과 88/89시즌 전반기 덕분에 수상한 거죠.



1989 - 마르코 판 바스텐(마르코 판 바스텐)

부상이 없던 판 바스텐은 무난하게 발롱도르 2연패에 성공합니다. 월드사커에서는 굴리트가 가져갑니다만 발롱도르에서 워낙 큰 차이였죠.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한 베베투가 있긴 한데 남미리그와 유럽리그가 슬슬 차이가 나는 시점이라고 봐서 패스.



1990 - 로타르 마테우스(로타르 마테우스)

발롱도르 수상 결과는 뭐 당연한 건데 이채롭게도 이해에 마테우스는 키커로부터 WK는 받았지만 수비형미드필더 3위에 그쳤었습니다. 1위는 귀도 부흐발트, 2위가 안드레아스 브레메였죠.



1991 - 장-피에르 파팽(장-피에르 파팽)

국내에선 정말 안 알려진 선수입니다만 당대 프랑스를 초토화시키고 유럽에서 손꼽히는 공격수였습니다.



1992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마르코 판 바스텐)

92년의 바르셀로나는 '드림팀'으로 불렸고, 스토이치코프는 그 팀의 주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에 수상은 판 바스텐이 싹쓸어갔죠. 막상 1위표는 11 대 10으로 1장밖에 차이가 안 났습니다만... 페터 슈마이헬은 덴마크의 유로 우승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만 발롱도르 놓자니 좀 아쉽네요. 데니스 베르캄프도 좀 어중간하고요. 어쨌든 타이틀이란 측면에서 저는 스토이치코프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1993 - 로베르토 바죠(로베르토 바죠)

카를로스 발데라마가 있긴 합니다만 이 당시 바죠는 정말 매력적인 선수였던지라 포기할 수가 없네요.



1994 - 호마리우(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바죠의 드라마틱한 실축 때문에 1994년은 바죠의 대회로 기억되곤 합니다만 실제로 이 대회에서 가장 빛났던 건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였죠.



1995 - 조지 웨아(조지 웨아)

보통 밀란이라는 이름 때문에 가려져있지만 이쪽도 사실 메이저 타이틀 없이 발롱도르를 수상한 케이스죠. PSG에 컵 타이틀을 하나 안겼지만 리그에서 우승하지는 못했고, 대신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을 4강에 올려놓고 본인은 득점왕에 오릅니다.



1996 - 마티아스 자머(마티아스 자머)

참 애매했던 때입니다. 자머가 리베로로서 유로1996의 우승을 이끌어내긴 했습니다만 포지션의 한계도 있었고 압도적인 우승팀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거든요. 그에 반해 호나우두는 정말 센세이셔널 그 자체였기 때문에 95/96시즌을 절반조차 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96/97시즌 전반기의 퍼포먼스로 2위에 오릅니다. 둘의 점수는 단 1점차였고, 1위표는 13 대 16으로 오히려 호나우두가 3장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1997이 아니라 1996이므로 전 자머에게 한 표를. 1988의 판 바스텐처럼 마땅한 타이틀이 있던 것도 아니고요.



1997 - 호나우두(호나우두)

이때부터 처음으로 투표인이 50명을 넘어갑니다. 그 이전에는 49명이 최고였죠. 그리고 역대 최초로 30장이 넘는, 38장의 1위표를 받고 발롱도르에 오릅니다.



1998 - 지네딘 지단(지네딘 지단)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1999 - 히바우두(히바우두)

트레블을 달성한 베컴이 밀린 걸로 유명한데, 히바우두에게는 라리가 우승 외에도 코파 아메리카라는 무기가 있었죠. 월드컵을 제외하고 비유럽대회가 발롱도르에 영향을 준 첫번째 케이스죠. 99년의 베컴은 좋은 선수긴 했는데, 세계 최정상급이었나 하면 그건 모르겠네요.



2000 - 지네딘 지단(루이스 피구)

유로2000 때문이라도 전 지단이 받아야한다고 봅니다.



2001 - 올리버 칸(마이클 오언)

01년에는 라울이 받았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칸을 고르고 싶습니다. 어찌됐든 오언만 아니면 됩니다.



2002 - 호나우두(호나우두)

호나우두가 1위를 차지하긴 했습니다만 정작 1위표는 16 대 23으로 2위였던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득표에서 호나우두가 크게 앞서서 수상할 수 있었죠. 저도 호나우두를 고르고 싶은 게 02월드컵이 호나우두를 위한 대회였죠.



2003 - 파벨 네드베드(파벨 네드베드)

2000년대 최고의 시즌 중 하나였죠. 대충 아무경기나 찍어서 틀어도 잘합니다.



2004 - 데쿠(안드리 셰브첸코)

유로에서 우승했다면 데쿠가 확실했을텐데 준우승 때문에 희비가 갈렸다고 봅니다만 클럽에서 포르투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것만 해도 데쿠가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고 봅니다. 좀 아쉬운 게 호나우지뉴와 티에리 앙리인데 각각 무관 + 유로의 아쉬움이 너무 크죠. 셰브첸코가 받아도 크게 문제는 없었던 거 같긴 합니다만.



2005 - 호나우지뉴(호나우지뉴)

굳이 말이 필요없죠.



2006 - 파비오 칸나바로(파비오 칸나바로)

역시나 생략합니다.



2007 - 히카르두 카카(히카르두 카카)

여기까지도 생략.



2008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마찬가지로 생략.



2009 - 리오넬 메시(리오넬 메시)

이것도 생략합니다.



2010 - 베슬리 스네이더(리오넬 메시)

트레블 + 월드컵 준우승인데 이건 개인수상이고 뭐고 못 받을 수가 있나... 싶었네요. 기자단 투표에서는 스네이더가 1위였었죠? 스네이더는 조별예선 일본전과 16강과 8강에서 결승골, 4강에서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2011 - 리오넬 메시(리오넬 메시)

생략합니다.



2012 - 리오넬 메시(리오넬 메시)

생략합니다.



2013 - 프랑크 리베리(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분매니까 생략합니다.



2014 - 마누엘 노이어(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분매니까 생략합니다.



이대로 쭉 나열해보면


6회 - 펠레

3회 - 프란츠 베켄바우어, 지쿠, 리오넬 메시

2회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요한 크루이프, 미셸 플라티니, 마르코 판 바스텐,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쓰다보니까 엄청 길어졌는데 제가 봤을 때는 대충 이렇습니다. 유럽 선수들은 안 건드리고 남미 선수들을 추가하는 걸로 하면 느낌이 좀 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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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모르는 선수가 많아서 참 흥미로웠어요. 축구지식으로 시험치시면 1등이실텐데. ㅜ ㅜ
  • 1994년에 말디니는 어떨런지요. (당시 발롱도르 득표율은 3위, 1994년 월드사커지에서는 1위, 1995년 피파올해의선수상은 2위)
    본문의 호마리우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월드컵 결승에서도 말디니 앞에서 공을 멈췄죠. (결국 쥴리메는 브라질이 가져갔지만)
    말디니는 당시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통산 2실점으로 우승을 안겨줬고
    리그에서는 15실점으로 우승, 당시 압도적인 클럽퍼포먼스의 중심이었죠.
    월드컵에서도 본연의 위치인 왼쪽풀백에서 뿐만아니라
    바레시의 공백을 완벽히 메우며 센터백으로서도 출중, 바죠와 함께 팀을 결승에 올려논 1등공신이죠.
    스토이코비치의 그 시절 발롱도르 수상에 의아한 이유와 동일하게, 호마리우를 1위로 하기엔
    챔피언스리그 4:0 석패가 마음에 걸리네요, 결승에서도 아주리 빗장수비에 잠잠했구요.
    개인적으로는 발롱도르나 피파올해의선수상보다 월드사커지 올해의 선수가 다소 정당하지않나, 생각하는데
    역사적으로도 다시없을 수비를 보여줬던 당시 밀란과, 아주리 빗장수비의 예표로서
    기나긴 발롱도르 역사에 말디니라는 거목이 한자리 차지하는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요.

  • 슈넬링거님께
    Raute글쓴이
    2015.2.5 03:29 댓글추천 0비추천 0
    호마리우를 뽑은 건 역시나 월드컵 우승의 상징성이 너무 거대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2010년 스네이더 말고는 전부 월드컵 우승팀 선수로 해놨죠. 그래도 쭉 보고 나니 진짜 수비포지션이 너무 적긴 하네요. 처음에는 60년에 야신을 넣을까 하긴 했는데 수비수는 90년대 초반 말디니 아니면 정말 못 넣겠네요. 그나마 피게로아고...
  • 감사합니다 그런데 06년 파비우 칸나바로인듯^^
  • sillim님께
    Raute글쓴이
    2015.2.5 03:30 댓글추천 0비추천 0
    칸나바로 형제 이름 헷갈렸네요. 수정했습니다.
  •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2010년 기자단 투표는 이니에스타가 1위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발롱도르 전체 다시수정이라.... 진짜 한번쯤은 건드려보고 싶은 그것이면서도

    왠만한 깜냥으로는 엄두도 안나게되네요ㅠㅠ 덕분에 분매에서 처음으로 댓글남겨봅니다~

    귀하신 지식정보 나누는것을 아껴주시지 않아 감사의말씀 올려드립니다!

  • 2010년은 저도 사비나 이니에스타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단투표는 제기억으로는 스네이더로 기억하는데 확실치는않네요. 일단 스네이더가 잘하기는했는데 2010-11시즌전반기를 날려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죠. 그리고 2014년의 경우는 노이어보다는 람이라고 봅니다
  • Deutscher Meister님께
    Raute글쓴이
    2015.2.5 11:54 댓글추천 0비추천 0

    스네이더가 10/11시즌 전반기에 꽤 부진했던 건 사실인데 그때 잘했다고 해도 결국 메시가 받았을 거라고 봅니다. 스네이더가 한창 부진하고 있을 때만 해도 배당률 1위였다가 막판 되어서야 2위로 내려왔었으니 4위에 그친 결과는 전반기 부진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거든요. 그보다는 주장/감독 투표에서 네임밸류가 떨어지던 선수의 한계라고 보고요. 심지어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스네이더가 월드컵에서 뭘 했냐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까지 나왔었고... 그 당시에 개인상이니까 스네이더가 아니라 메시가 받아야한다던 메시 팬들이 작년에는 월드컵 골든볼을 이유로 메시 지지하는 건 꽤나 재밌었습니다.

  • Raute님께
    상의 수상기준이 바뀐시점부터 메시가 받을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그걸지지하지도 않습니다. 전 다만 스네이더가 1011전반기를 날렸기때문에 스네이더보다는 사비나 인혜 또는 비야가 받는게 맞다고 본거죠.
  • 개인적으로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가 통합되어 소위 말하는 피롱도르가 된 시점부터는 기존의 발롱도르와 엄연히 다른 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처럼 2010년의 스네이더나 2013년의 리베리가 피롱도르의 피해자?가 된 케이스라고 보구요.
  • 2014년 노이어.. 감사합니다
  • 2014년 노이어.. 감사합니다
  • 심심풀이클라스
  • 마라도나가 한번밖에 없는건 의외네요 밀란이랑 겹친시기라 그런지...
  • 지금에서야 봤는데 독일선수에 많이 편향된 느낌이네요. 72년에 트레블을 한 크루이프를 두고 베켄바워가 가져갔는데 반대로 그러한 논리가 74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겁니다

    72년이 베켄바워가 맞다면 당연히 74년에도 크루이프가 맞는거겠죠. 2번다 베켄바워라고 해버리면 "너 독일인 아냐?"라고 한소리 들을 만큼 일관성이 없다고 할걸요

    뭐 개인의 팬심이 그렇다면 남이 뭐라할수없는 부분이긴 하지만요. 대신 설득력은 떨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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