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가 말해주듯 참패였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 되짚어보고 '까더라도 제대로 까보자'라는 생각으로 캡처를 떠봤습니다. 나름 줄여보겠다고 단순한 패스미스나 돌파를 허용하는 장면, 세트피스시 헤딩경합 패배 등은 다 빼버렸습니다. 지역방어의 실패, 잘못된 선택, 커뮤니케이션 미스 등 명백하게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어보이는 것만 뽑아봤습니다.
자, 첫 장면입니다. 킥오프 직후죠. 알제리는 시작부터 공격수들을 이용해 전방 압박을 시도합니다. 기성용, 홍정호, 김영권 세 사람은 서로 공을 주고 받으면서 이 압박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공을 받아줘야 할 사이드백들이 너무 올라가있습니다. 오른쪽의 이용은 아예 공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올라갔고, 왼쪽의 윤석영 역시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저 사이드백들이 패스 받을만한 거리로 돌아왔다가 중앙에서 공을 돌리니까 다시 전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김영권이 기성용에게 공을 너무 늦게 줬기 때문에 공격수들의 전진에 위협받게 되었고, 기성용은 측면의 윤석영에게 주는 대신 논스톱으로 김영권에게 되돌려줍니다. 그리고 김영권은 압박을 피해 전방에 뻥 공을 차줬고, 헤딩 경합을 하던 박주영이 반칙을 범하면서 공의 소유권을 잃게 됩니다. 시작하자마자 전방압박에 당황하는 모습이었죠. 캡처를 좀 애매하게 찍었는데 위 장면은 기성용이 한 번 터치를 하고 주는 게 아니라 김영권이 공을 주자 잡지 않고 바로 되돌려주는 장면입니다.
2번째 장면입니다. 이청용은 메스바가 전진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나 따라가지 않고 고개를 돌린채 빈 자리를 계속 지키다가 메스바를 놓치게 됩니다. 할리시는 이용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온 자부에게 공을 건네줬고, 메스바는 그대로 빈 공간으로 돌진합니다. 비록 자부의 패스가 부정확해 메스바에게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지만 메스바는 이청용을 상대로 볼경합에서 이긴 다음 몸을 날려 자부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줍니다. 자부는 달려나가 다이렉트 크로스를 올리고, 이를 중앙으로 쇄도해온 페굴리가 받아 슈팅을 날립니다. 이청용은 저 자리를 굳이 지킬 이유가 없었습니다. 주변에 알제리 선수라고는 한참 뒤에서 이용이 마크하고 있던 자부와 본인의 바로 앞에 있는 메스바뿐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어설프게 공간을 지키다가 패스는 패스대로 내주면서 메스바의 전진만 허용했죠. 게다가 이어진 볼경합에서 메스바에게 패하면서 완벽하게 기회를 내줬습니다.
3번째 장면입니다. 메스바의 정면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막혀있습니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공을 오른쪽으로 돌리거나 돌파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공간을 좁혀줘야 할 한국영은 다가오는 대신 오히려 뒷걸음질치며 공간을 내줍니다. 보시다시피 한국영의 뒤에 알제리 선수들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손흥민이 그 뒷공간을 커버해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메스바는 저 빈공간을 향해 쇄도하고, 브라히미에게 공을 건네줍니다. 이어서 브라히미는 수비수들을 개인기로 따돌린 다음 크로스를 날립니다. 이 크로스는 볼경합 끝에 페굴리에게 이어졌고, 김영권이 페굴리에게 태클을 해 굴러나온 공을 브라히미가 다시 슈팅으로 연결하며 마무리됩니다. 문제는 이 태클이 발목을 걷어찬 반칙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경기장에 갑자기 야유가 터져나왔던 거고, 이 오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시작한지 3분만에 PK를 내줬다는 거죠.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걸 반칙이라고 제대로 짚어주진 않더군요. 아무래도 애국해설이라... 사족인데 차두리는 해설로서 꽤 자질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애국해설 배제하고 발음 조금만 교정하면 해설가로 전업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네번째 장면입니다. 이번에도 김영권의 잘못된 판단과 패스를 볼 수 있죠. 기성용은 프리킥 상황에서 옆의 김영권에게 공을 건네줍니다. 김영권은 이를 받고 망설이다가 좌측의 윤석영, 중앙의 한국영에게 공을 주는 대신 몸을 돌려 후방의 홍정호에게 주는 선택을 합니다. 본인이 처리할 자신이 없었으면 시간을 끌다가 기성용에게 되돌려주기라도 했어야했는데 이도저도 아닌 채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오른쪽의 이용에게 롱패스라도 하든가요. 그렇다고 홍정호에게 전달된 공이 안전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패스가 느렸기 때문에 홍정호가 공을 받으려 할 때는 이미 슬리마니가 앞에 나타난 상황이었고, 부정확하게 다이렉트 롱패스를 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 알제리의 실수로 소유권을 되찾아오긴 했지만 좋지 않은 장면이었죠.
다섯번째 장면입니다. 후방에서 헤딩으로 볼을 따낸 것을 기성용이 받으러 갑니다. 기성용은 속도를 그대로 살려서 속공을 진행하거나 혹은 주변의 가까운 선수에게 넘겨 호흡을 돌리는 대신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속도를 줄인 채 볼을 잡은 다음 턴을 시도하다가 미끄러졌고 압박하러 온 알제리 선수들에게 볼을 빼앗기게 됩니다.스루패스까지는 무리더라도 그냥 손흥민에게 바로 주는 쪽이 공세를 이어가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괜히 호흡 고르려다가 볼만 내줬죠.
6번째 장면입니다. 윤석영이 슬리마니를 마크하고 있습니다. 슬리마니와 키가 같은 김영권-홍정호 두 센터백 대신 3cm 더 작은 윤석영이 마크하는 것도 이상합니다만 윤석영은 볼의 낙하지점을 잘못 파악하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몸을 돌려보지만 역동작에 걸리면서 슬리마니를 자유롭게 풀어줬고, 헤딩을 허용합니다. 비록 옆그물로 들어갔지만 실점 위기였죠.
7번째 장면입니다. 구자철이 태클한 공이 뒤에 있던 손흥민에게 굴러갔고 손흥민이 그 스피드를 살려 돌진하는 중이죠. 박주영은 좌측의 빈 공간이 아니라 우측의 페널티에어리어 중앙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자철이 뒤늦게 뛰기 시작해서 박주영이 측면으로 가봤자 효과적인 공격이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상대 라인을 부수기 위해 수비와 동일선상에 서야 하는데 뛰다가 할리시 앞에서 속도를 줄여버립니다. 공격수 바로 앞에 수비수가 있으니 손흥민이 크로스를 하기도 애매했고, 단독돌파를 시도하다가 결국 아웃이 됩니다. 구자철이 속도를 늦게 내서 손흥민을 도와주지 못했던 점도 좀 아쉽네요.
8번째 장면입니다. 이청용은 알제리의 압박에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그런데 이를 풀어줄 선수가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용은 제때 전진을 하지 못해 한참 뒤에야 올라왔고, 좌측도 아무도 없습니다. 박주영이 넘어졌다가 일어났는데 아래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냥 이청용을 바라보면서 정면으로 갑니다. 그것도 걸어서요. 문제는 정면에는 이미 구자철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저 자리를 박주영이 차지해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났을 때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박주영 대신 주변이 다 수비수로 둘러쌓인 구자철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고, 이청용은 태클을 당해 프리킥만 얻어냅니다.
9번째 장면입니다. 다시 수비를 보죠. 손흥민과 한국영의 좌측은 비어있습니다. 저 자리를 비워둬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혹은 저 자리를 고수해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태클을 잘해서 공을 잘 빼았는다 한들 이런 식으로 공간 다 내주면 결국 수비에서 까먹는 거죠. 한국영은 대각선으로 올라가서 상대의 예상경로를 막는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다가 상대의 롱패스를 보고 뒤늦게 좌측으로 뛰어가면서 늦었고, 손흥민 역시 깔아주는 패스를 할 거리가 아닌 만큼 로빙패스를 의식해서 상대선수에 더 붙어있어야했는데 거리를 두고 어슬렁거리다가 롱패스에 완전히 당하고 맙니다. 만디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공을 받아 슬리마니에게 크로스를 성공시킵니다. 공이 슬리마니의 발등을 맞고 그대로 붕 떴습니다만 이 역시 슬리마니가 약간 더 빠르게 움직여서 슈팅으로 연결했으면 실점했을 상황입니다.
10번째, 첫 실점장면입니다. 중앙수비수 두명이 달려들어서 공 하나 못 따내는 것도 촌극입니다만 저 긴 거리를 주파하는 동안 정성룡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자기 가슴께로 손을 들어올리면서 주저앉는 게 다였습니다. 어차피 공격수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면 나와서 각도라도 좁혀보든가요. 보통 튀어나와 각도를 좁히지 않는 게 칩샷에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가만히 있다가 칩샷에 당할 거였으면 적어도 나오는 게 나았을 겁니다. 특히나 공격수의 양 옆에 체격 좋은 센터백이 2명이나 있었으니까요.
11번째 장면입니다. 독일과 가나의 경기에서 2번째 실점으로 이어진 람과 케디라를 보는듯한 모습입니다. 람은 적어도 케디라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기라도 했지, 이 패스는 명백하게 세 명한테 둘러쌓이는 상황입니다. 이 인터셉트는 알제리의 슈팅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브라히미의 슈팅에서 코너킥이 선언되었고, 알제리는 2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12번째 장면입니다. 2번재 실점인데 정성룡은 낙하지점을 잘못 파악해 너무 뒤에 있었고, 할리시는 농구에서 스크린플레이를 하듯 돌아나와 정성룡의 바로 앞에서 공을 잘라먹는 헤딩을 합니다. 김영권은 마크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하면서 또다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13번째 장면입니다. 오른쪽에서 이용이 전력질주를 합니다. 분명히 그 앞에는 공간이 뚫려있고, 가로막고 있는 수비수도 없습니다. 완벽한 측면 스루패스 찬스입니다. 그러나 이청용은 이용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주는 대신 공을 갖고 끌다가 뒤늦게 가장 위에 있는 화살표 방향으로 차줬고, 너무 길게 들어간 이 패스는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가 골킥이 됩니다.
14번째 장면입니다. 다시 한 번 이청용. 이번엔 윤석영과 이용 두 선수 다 앞에 공간이 있습니다. 이 앞으로 스루패스를 찔러주면 됩니다. 이용은 수비가 가깝다지만 윤석영은 정말 완벽하게 비어있습니다. 저런 장면에서 찔러주는 스루패스는 얼리 크로스 -> 헤딩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공격방법이죠. 그러나 이청용은 저들에게 패스를 주지 않습니다. 가운데에 수비를 달고 있는 손흥민에게 주고, 손흥민은 수비를 데리고 다니느라 제대로 패스를 받지 못하고 볼경합을 하면서 계속 후퇴합니다. 차라리 박주영이 수비수 2명을 달고 있으니 그 앞에 자유롭게 있는 구자철에게 주는 게 나았을 겁니다. 윤석영에게 주는 거리가 멀어서 부담스러웠으면 이청용 -> 구자철 -> 윤석영이 되었어야죠.
15번째 장면입니다. 역시 비슷한 케이스. 불과 20초만에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합니다. 박주영은 좌측에 있는 윤석영이 아니라 중앙에 있는 구자철에게 공을 주고, 구자철은 자신을 둘러싼 압박에 그대로 무너지면서 공을 뺏깁니다. 마찬가지로 윤석영에게 주는 게 부담스러웠으면 본인에게 공을 줬던 기성용에게 줘서 다시 윤석영에게 이어지게 했으면 됩니다. 그러나 공을 갖고 앞으로 나오다가 구자철에게 주면서 그대로 기회를 날리죠.
16번째 장면입니다. 이번에도 센터백 2명이 다 자부에게 붙습니다. 이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따낸 헤딩이 바로 슬리마니에게 갔다는 거죠. 그러면 이 슬리마니를 마크하고 있던 이용이 무얼했느냐 하면 슬리마니가 위로 올라갈 때 계속 좌측으로 달립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면 이용이 슬리마니를 보지 않고 공을 바라보며 달렸기 때문입니다. 공이 떨어진 걸 확인하고 움직였을 땐 이미 슬리마니가 앞에서 공을 받은 뒤였죠. 여기서 3번째 실점.
17번째 장면입니다. 손흥민이 상대의 패스를 탈취해 구자철에게 건네줍니다. 박주영은 중앙에 쇄도하고 있습니다. 할리시는 구자철을 막느라 박주영에게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죠. 구자철이 굴러오는 공을 왼발로 바로 오른쪽으로 밀어주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받았고, 필연적으로 볼터치가 길어지게 됩니다. 이어서 압박에 무너지고 볼을 뺏기면서 찬스 무산.
18번째 장면입니다. 윤석영은 박주영이 다가오는 걸 보고 2대1 패스를 시도합니다. 공을 툭 차주고 돌진하는 것까진 좋았습니다만 패스가 부정확하면서 박주영을 지나가버리고 그대로 공은 알제리의 차지가 됩니다. 2대1 패스가 성공했으면 바로 크로스 찬스가 나왔겠죠. 그러나 서로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저 근거리에서의 패스조차 실패한 거죠.
19번째 장면입니다. 홍정호가 뒤에서 찔러준 패스를 이청용이 논스톱으로 옆으로 보내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박주영은 패스를 예상하지 못한 나머지 역동작에 걸려 넘어지고 그대로 알제리에게 공이 넘어갑니다. 이청용의 패스가 부정확했던 것도 있지만 박주영이 역동작에 걸리지 않았다면 약간 뒤에서나마 받았을 겁니다.
20번째, 마지막 장면입니다. 기성용이 공을 잡아 손흥민에게 건네줍니다. 그러나 손흥민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고, 기성용의 힘없는 패스는 데굴데굴 굴러서 하프라인을 조금 넘고는 바깥으로 나가버립니다. 앞으로 길게 찔러줘도 모자랄 판에 바로 앞에 톡 차서 빠졌으니... 손흥민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백미죠.
알제리전을 앞두고 언론들은 각종 설레발을 쳤습니다. 알제리가 내분이 있다, 팀 케미스트리가 나쁜데 우리나라는 조직력이 좋고 분위기가 좋으니 충분히 해볼만하다! 현실은 알제리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져내렸습니다. 지역방어 위치도 못 맞추고, 커버플레이도 제대로 안 되고, 스루패스는 커녕 2대1 패스조차 위치를 예상 못 해서 실패합니다. 마지막에 있던 기성용의 저 패스는 보면서 이것이 한국이다!를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3:0이란 스코어가 충분히 충격이었지만 오심이 아니었으면 4:0이었고, 알제리쪽에 운이 좀만 더 따라줬으면 5:0, 6:0도 될 수 있는 전반전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알제리가 그나마 1승 상대로 보이고, 아마 비기지 않을까 예상을 했었는데 예상 외로 알제리의 경기력이 상당히 좋았고(그에 반해 러시아는 시로코프의 공백이라기엔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우리는 기대 이하로 형편없어서 아주 대참사를 만들어냈네요. 시간을 눈여겨보시면 10~20분 정도에는 거의 없을텐데 이때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압박 잘 하고 주도권을 어느 정도 되찾아왔었습니다. 그러나 미숙한 연계와 돌파의 실패로 기회를 계속 놓쳤고, 첫 실점 이후 완전히 멘붕에 빠지면서 그대로 무너졌죠.
높은 수비라인과 단조로운 공격작업 등 전술에 대해선 깔 요소가 넘쳐났습니다. 지금 기초적인 움직임만 전반에 20개를 찝어냈는데(그것도 줄이고 줄여서 뽑은 장면들이고) 이게 팀인가 싶습니다. 후반은 좀 달라졌다 한들 여기서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고요. 그래서 후반전은 이렇게 해볼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사실 귀찮기도 하고, 이쯤 되면 국대에 대한 애정을 넘어 축구 팬으로서 화가 날 정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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