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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컨피덴셜 제1장 - 시간, 인내, 정숙(1)

Pivote2016.01.02 01:22조회 수 2898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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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매에도 작년말에 발매된 펩 컨피덴셜의 일부 내용이 올라와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제가 올리는건 원판은 아니고 직접 구매한 일어판 번역내용입니다.

아마 중복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 같네요.

현재 1장을 거의 다 읽은 상황인데 시간되는대로 조금씩 올릴 예정입니다.

하나의 장이 차지하는 페이지수도 제법 되는편인데다 글자수 제한이나 읽는 사람들의

피로도도 생각해서 내용을 쪼개서 나을 것 같고 한번에 3~4개 챕터씩 올릴듯하네요.



1장 시간, 인내, 정숙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 칼 하인츠 루메니게

 

우리에게는 정숙이 필요하다 - 마티아스 잠머

 

내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 펩 과르디올라

 

1. 카스파로프의 수수께끼 - 201210월 뉴욕

 

저녁식사는 온화하게,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개리 카스파로프는 샐러드를 먹는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불가능해……」 3번째는 확실히 초조함이 보였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는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젊은 체스 선수 마그누스 칼센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할까. 어째서…」. 2명은 몇 주 전에 막 친구가 되었을 뿐이다. 불굴의 정신, 노력, 지성, 헌신, 끈기,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겸비한 카스파로프라는 인물과의 만남에 펩은 흥분했다. 짧은 2번의 식사를 함께 하면서 경제 및 기술, 스포츠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체스 초인에게 열중하게 되었다.


FC바르셀로나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를 쌓아 올린 남자는 축구의 엘리트에서 물러나 이제 막 뉴욕에서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감독 취임 1년차에는 6, 4년 동안 14개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에 펩은 공허해졌다. 더욱 지치고, 초조해지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 전에 바르셀로나에안녕을 선언해야만 했다.


뉴욕에서의 재출발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되찾고,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한편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과 친한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목표의 하나였다. 그 친구 중 1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이면서 콜롬비아 대학·경제학 교수이자 2009-10시즌에는 바르셀로나의 경영 조언가를 맡았던 사비에르 살라이 마틴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살라이 마틴은 꽤 오래 전부터 뉴욕에서 살고 있다.


실은 펩의 가족은 뉴욕에 사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아이들은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고, 부인 크리스티나는 고향 카탈루냐의 가업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어준 것은 살라이 마틴이었고 아이들과 부인의 뉴욕에서의 생활에 여유를 가져다주었다.덕분에 가족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1년을 보낼 수 있었어라며 펩은 감사했다.


카스파로프는 살라이 마틴의 친구였다. 가을의 어느 날 밤, 펩은 뉴욕의 자택에 그(살라이 마틴)를 초대했다. 그러자 생각지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미안해. 오늘밤은 카스파로프 부부와의 약속이 있어하지만 이것은 펩 부부와 카스파로프 부부를 회식에 동반시키기 위한, 스스럼없고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이렇게 2명은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체스와 축구의 이야기가 아닌 기술과 발명, 상식을 파괴하는 가치, 불확실한 일을 앞에 두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패션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특히, 패션에 관해서는 많은 대화가 오갔다.


카스파로프는 기술의 진화에 관하여 혜안을 가졌으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기술은 투기를 위한 것에 불과하며, 사회에 대한 경제적인 공헌이 적다고 말했다. 또한 직업으로서 여성의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만든 전기의 발명과 인터넷의 발명은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듯 했다. 전 체스 세계 챔피언은 인터넷을 통해 산출된 경제의 실제 영향은 전기의 발명이 가져다준 것보다 훨씬 떨어져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아이폰은 아폴로11에 탑재되었던 컴퓨터 프로세서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10만 배는 고성능이다. 하지만 한쪽은 달에 인류를 도착시키기 위해 사용되었고, 휴대폰은 코지마를 죽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휴대폰 게임소프트 앵그리 버드를 말함). 경이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살라이 마틴조차 카스파로프와 펩의 대화를 지성과 인스피레이션이 넘치는 대화는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2명은 그로부터 몇 주 뒤에 다시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2번째 저녁식사 모임에서 살라이 마틴은 남미에 가느라 불참했다. 체스로 화제가 옮겨갔을 때 펩은 카스파로프의 어느 한마디에 홀려버렸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마구누스 칼센은 새로운 세계챔피언이 될 거야라고 예언한 것이다(이 식사로부터 1년 뒤인 2013년 칼센은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카스파로프는 체스의 완벽한 지배를 위한 비결, 약점을 수정하는 트레이닝을 칼센에게 가르친 적이 있다. 펩의 집요한 질문이 계속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


지금의 네가 이 젊은 챔피언을 패배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그에게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 하지만 이기는 건 불가능해


모든 충동을 컨트롤하면서 차분한 전략으로 15년 동안이나 세계의 정점에 계속 서왔던 남자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이었다. 펩은 질문을 계속했다.


하지만 개리, 너는 힘을 갖고 있는데 어째 서지?

불가능해……」


펩은 완고한 사람이다. 간단히는 물러서지 않는다. 3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체스선수는 보호를 위한 견고한 껍질 속에 갇혀버렸다. 마치 체스판 앞에서 열세에 처해있을 때처럼, 눈동자는 요리의 접시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재차 푸념을 반복할 뿐이었다.


불가능해……」


마지막으로 펩은 전술을 바꿔봤다. 조금밖에 맛보지 못한 샐러드 접시를 옆에 두고 카스파로프가 젊은 칼센에게 이길 수 없다고 느끼는 이유를 말하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단순한 흥미본위가 아니다. 그의 답에는 스포츠에 있어 높은 레벨의 열쇠가 감춰져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펩은 어떻게 해서라도 알고 싶어 했다. 눈앞에 살아있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은 여전히 틀림없이 승리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왜 불가능한 것일까? 물론 호기심도 있었지만 카스파로프의 수수께끼는, 손자에게 말해주기 위한 일화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펩에게 있어서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왜 바르샤에서 그 정도까지 소모되었던 것일까? 이만한 소모를 앞으로 어떻게 피해가면 좋을까?. 만약 펩을 정의한다면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불안과 무시가 아닌,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의심이다. 완벽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을 품는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느낀다. 모든 선택지를 재검토하지 않는 한 가장 좋은 해결책을 발견해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체스 마스터가 다음 수를 옮기기 전에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다. 의문을 해결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펩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운 일면이기도 하다. 이 남자는 최종결정 전의 어떤 플레이에 대해서도 빙글빙글 사고를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


경기 준비에 임할 때는 팀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는다. 선수는 공격을 위해, 볼을 위해,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 도전한다. 하지만 경기의 콘셉트는 매우 넓고 펩은 작은 선까지 그린다. 그의 큰 아이디어는 매우 작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준비를 위한 1주일 동안 쭉 작은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짜 맞추고 수정한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선발 명단, 선수의 공헌도, 상대에 맞춘 움직임, 선수간의 조화, 상대의 공격에 맞춘 라인 간의 상호 작용……etc.


펩의 지성은 마치 체스선수와 같다. 전개를 예견하고, 자신들과 만날 상대의 모든 것을 평가해서 이익과 손해를 잰다. 어떤 팀을 상대하더라도 준비는 마찬가지다. 모든 옵션을 세세하게 조각내서 채점할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는다. 끝나면 다시 재검토하고, 여러 번 생각하기 시작한다. 펩의 오른팔 마넬 에스티아르테는 펩을32분의 왕이라고 평가한다. 에스티아르테는 감독의 집착을 제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기분전환을 하도록 한다. 하지만 30분 이상 그랬던 적은 없다고 한다.

축구를 잊게 하려고 점심식사에 초대했어요. 하지만 32분이 지나자 멀리 가버렸죠. 눈은 천장을 바라봤고, 맞장구를 쳐도 더 이상 저를 바라보지 않았고, 게다가 상대팀의 왼쪽 측면수비수, 메디오센트로의 커버, 윙의 지원 등을 생각하더군요(에스티아르테)


카스파로프의 답은 펩에게 있어서도 중요했다.


, 카스파로프 같은 전설적인 마에스트로가 힘이 있다고 자각하면서도 라이벌에게 이기는 게 불가능한 것일까?


테이블의 화제는 다시 정숙으로 돌아갔고 감동의 소모를 거쳐 집중력으로 귀착되었다.아마 집중력의 문제가 아닐지. 펩의 부인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그리고 남편 카스파로프를 대신해서 달리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1경기, 2시간만이라면 개리는 칼센에게 승리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지 않아. 게임은 5, 6시간이나 걸려. 개리는 그런 오랜 시간 동안 쉴 틈도 없이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면서 머리를 사용하는 괴로움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칼센은 젊고, 자신이 소모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개리는 달라. 온종일, 그것도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1명은 집중이 2시간, 다른 한쪽은 5시간. 그러니까 이기는 게 불가능한 거야

「………」


카스파로프는 마지막으로불가능이라는 말 외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밤 펩 과르디올라는카스파로프의 수수께끼를 계속 생각했다. 거의 잠들지 못한 채…….

 

2. 비의 뮌헨 - 2013624일 뮌헨

 

바이에른에서의 첫날은 비…… 산 후안의 날이었다. 펩은 넘치는 충실감을 억눌러야만 하는 순간까지 기쁨을 감추지 않았고 신이 나 있었다. 중압에 의한 불안 이상으로 행복했다. 바깥의 비도 폭죽과 불꽃으로 활기 넘치는 카탈루냐의 산 후안 축제도 이 남자에게는 관계없다. 다시 축구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행복에 사로잡혀 있다. 그 외에 열광적이고 고성능인데다, 에너지 넘치는 바이에른이라는 수말의 등에 올라탄다. 이 계약의 환희는 트레블을 달성한 것에 필적했음이 틀림없다.


2013624일은 바이에른에게 있어서도 역사적인 하루가 되었다. 감독취임 기자회견에는 247명이나 되는 기자들이 취재허가(Accreditation)를 받았다. 기록적인 숫자다. 황제의 즉위식과 같은 열광이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 가득 찼다. 펩은 더 이상 바르셀로나를 떠났을 때처럼 피로하고 고달파하지 않는다. 눈동자에는 빛이 돌아왔다. 그 빛은 매우 좋아하는 볼에 다가가는 것에 대한 증거이자 열정 그 자체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선수가 되기 훨씬 전부터 좋아했다. 뛰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 클럽과 유스의 젊은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분데스리가의 라이벌들을 보다 빨리 배우기 위해 나는 제페너 슈트라세(연습장)에 틀어박힐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 날, 기자 회견장을 바라보니 펩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에스티아르테가 있었다. 항상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자 펩의 오른팔이다. 펩이 침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엄격하고 정확한 조언을 전달한다. 때로는 언쟁을 하기도 하지만 뭐 나쁘지 않다. 그 옆에 바르셀로나 시절부터의 스태프 도메넥 토렌트는 헤르만 헤라르드와 함께 세컨드 코치의 역할에 취임. 헤라르드는 토마스 뮬러와 다비드 알라바, 필립 람을 가르쳤던 지도자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감독 취임 당시 모든 것을 버리고 펩의 밑으로 달려갔던 피지컬 코치 로렌소 부에나벤투라도 기자들과 섞여서 앉아있다. 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한명이다. 추가로 그 옆에 있는 것이 스카우팅 담당자 카를레스 플란차르트 역시 바르셀로나 시절의 동료다. 상대의 분석과 더 중요한 자기 팀의 분석을 담당한다.


놀라운 것은 펩의 부인 크리스티나와 장녀 마리아가 6번째 열에 앉아있던 점. 게다가 펩의 바르셀로나 감독취임을 강하게 후원했던 전 바르셀로나 이사인 에바리스트 뮤르트라, 스페인축구의 영상권을 가진 회사를 경영하는 자우마 로테스, 펩의 동생 페레 과르디올라의 모습도 확인되었다. 마지막으로 발견한 호세 마리아 올브리히는 펩의 소중한 친구이자 에이전트다.


그런 와중에 클럽의 집행이사인 칼 하인츠 루메니게가 이미 정해진 목표를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아름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데스리가 타이틀이다. 분데스리가는 34경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팀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는 그렇지 않다. 펩이 팀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바꿔나갈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


그는 클럽을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한 퍼즐 조각, 그것이 펩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세계랭킹에서 바르셀로나에게 10포인트 차까지 쫓아갔다. 하지만 아직 2위다. 이번 시즌 큰 성공을 거뒀다고는 하더라도 1위는 아니다. 과르디올라와 같은 감독과 계약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바이에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펩은 팽창하는 열기를 식히려고 했다.


내가 바이에른의 한 시대를 쌓는데 있어 단순한 추측은 하지 않겠다. 한걸음씩 걸어갈 뿐. 기대가 매우 높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약간은 흥분된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이 순간적으로 술렁거린다. 아무도 펩이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확한 문법표현에 놀란 모습이다. 독일인 기자들이 앞을 다투어 질문을 시작할 정도로 능숙한 독일어였던 듯하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2008년 바르셀로나에서 데코, 호나우지뉴를 잘라낸 시기와 같은 변혁이 있을지 여부였다. 긴장된 공기 속에 펩의 독일어가 섞여들어 갔다.


팀이 달라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 생각에 4개의 타이틀(2012년의 독일 슈퍼컵을 포함해서)을 얻은 팀은 바꿀 필요가 없다고 본다. 바이에른은 매우 좋은 팀이다. 승리의 숫자뿐만 아니라 그의 커리어라는 측면에서도 존경하는 하인케스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일이다. 그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하인케스의 후계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회장 울리 회네스는 펩의 말을 이어받아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훈련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다니, 라고 펩이 말했을 때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감독과 클럽은 청년과 같은 정열과 큰 뜻, 큰 가능성을 공유하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뤄낸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지금부터다. 축구는 항상 0에서 출발해서 현재가 있을 뿐인 것이다. 펩이 회장의 말에 답했다.


바이에른 같은 클럽이 불러줬기 때문에 준비를 마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기가 무르익었다. 내게 있어 큰 도전이다. 바르셀로나 시대도 물론 훌륭했지만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바이에른은 내게 그 가능성을 열어줬다. 여기서는 항상 좋은 플레이를 하고, 승리해야만 한다. 큰 압박을 느끼고 있지만 준비는 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대회에서 승리한 팀에게 큰 변화는 필요 없다


2008년 바르샤를 맡았을 때의 연설과는 크게 달랐다. 그 때는 경기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스로인까지 다투고, 달리고, 싸울 것이라 선언했다. 이제는 그런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펩은 그 앞을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독으로서의 압박도, 뮌헨의 백주와 비처럼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말해서 펩은 이 도시의 경치의 일부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짧은 말로 언론에 전했다.


내가 항상 품고 있는 철학은 공격, 공격, 그리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 뒤 펩이 처음으로 알리안츠 아레나의 벤치에 앉은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의 사람들은 피치로 내려갔다. 비가 막 갠 바깥 공기를 마시며 나는 감독이 좋아하는 그리스 시인 카바피스의 이타카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펩에게 말을 걸었다.


여행길이 길어지도록……」


그러자 뮌헨의 상쾌한 아침 속에 있는 한 명의 카탈루냐인이 천천히 발길을 되돌려 카탈루냐어로 덧붙였다. 다정하게 미소 지으면서…….


좋은 여행이 될 수 있기를!


펩에게는 볼과 정열과 축구가 필요했다. 바이에른에는 대체 뭐가 필요한 걸까? 왜 변화를 택했어야만 했을까? 무적의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 어째서 기수를 바꿔야만 했던 걸까?


바이에른이 감독을 교체한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성공한 시즌 뒤에 보다 더 지적인 노력을 팀에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클럽은 정체성을 잃고 고전했던 시기가 있었다. 새로운 길을 밝혀줄 지혜를 모색한 간부들은 클럽의 방식과 경영을 다시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바이에른은 역사, 자금력, 자존심, 사회적 지원, 영광으로 가득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성공은 독일인의 가장 좋은 장점이 쌓아 올린 것이다. 믿는 마음, 강철과 같은 정신력, 인내의 지속성…….


하지만 독일축구를 현대 축구로 정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네스와 루메니게는 부족한 것을 얻기로 결심한 것이다. 단순히 타이틀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타이틀도 노리면서 불멸과 주도권을 잡을 정체성의 징표를 원했던 것이다. 바이에른을 상징해왔던 끈끈하고 강인한 기력, 신체적 능력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뮌헨 사람들의 현명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정점에 있을 때 쇄신하고자하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바이에른에는 하인케스의 노선을 답습하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펩의 손으로 또 한걸음 전진해서 특징을 갖춘 팀으로 만드는 것을 원했다. 간단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하인케스는 매우 높은 바를 설치했기 때문에.


펩의 눈동자는 바이에른의 패러독스를 비추고 있다. 이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정상에 있음에도 또 한걸음 앞으로 내딛고자 하는 패러독스를.


이 날 알리안츠 아레나의 피치 위에서 펩은 다가올 세월을 도와줄 수 있는 테크니컬 디렉터 마티아스 잠머에게 패러독스에 도전하는 공범자로서의 사인을 보냈다. 뮌헨은 1년에 134일이나 비가 내린다. 펩은 이러한, 당연한 비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3. 바이에른으로의 여행길에 오르다 - 201210월 뉴욕

 

5개월 동안 펩은 많은 오퍼를 받았다. 오퍼라고 해도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첼시, 맨체스터 시티, 밀란,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바이에른으로부터. 그것은 펩의 수완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러브레터 같은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와 작별할 때까지의 여정은 길고 험했다. 클럽과 코치 티토 빌라노바에게 결심을 전달하기 전에 그는 친구 에스티아르테에게 의사를 밝혔다.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설명했지만 실은 소모라는 한마디에 불과했다. 집중과 긴장의 4년 동안 펩의 심장과 육체는 텅 비어버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축구의 모든 것을 줬고 더 이상 공헌할 수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것만이 동기는 아니다. 4년 동안 펩은 바르셀로나에서 감독으로서, 리더로서, 스포츠맨으로서, 실질적 회장으로서, 또 경기의 이동 관리자까지도 소화해왔다. 1년차에는 활기차고 충동적, 대담하고 강렬한 개성의 호안 라포르타 회장의 밑에서 일했다. 다음 회장의 자리에 앉은 것은 산드로 로셀. 온화한 언행과 엘리트로서의 냉정함을 겸비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나눠 사용하는 인물이었다. 거만한 라포르타에게는 펩은 조심성 있게 그를 따랐다. 필요 이상으로 도덕을 신경 쓰는 겁쟁이 로셀에게는 항상 활기차게 대응해야만 했었다. 2명의 회장과의 관계는 간단하지 않았다.


라포르타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2번의 빛나는 기회를 줬다. 첫 번째는 3부에서 2부로 승격된 바르셀로나B의 감독으로 채용해준 것. 펩은 이 승격을 챔피언스리그와 스페인리그 타이틀에 버금가는 공적의 하나로 소중하게 생각한다.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기란 그만큼 곤란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1년 뒤에 1군 감독 취임. 펩의 감사의 마음은 성실이다.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동료이자 당시 바르셀로나의 스포츠 디렉터였던 치키 베기리스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감사의 마음을 바쳤다.


라포르타와 보낸 세월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성공을 거뒀지만 고생도 많았다. 팀은 한 길을 걸었지만 클럽 전체는 그렇지 않았다. 풋워크가 가벼운 쪽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둔한 대형선을 조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펩이 키를 잡는 피치 위의 리듬과 방침과는 확실히 다른 방향으로, 바르샤는 너무 거대해져 갔다. 그럼에도 라포르타와의 스포츠 면에서의 조화는 일치했고 팀은 모든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2010년 초 펩은 자신의 미래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로셀이 그 해 여름에 실시된 회장선거의 유력후보자였기 때문이다. 라포르타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이유로 부회장직(2003~2005)을 사임한 뒤에 압도적인 지지로 후계자로서 돌아왔다. 신임 회장은 매우 번잡한 클럽 사무에 추가로 관료적인 업무방식을 도입했다. 그것은 라포르타파라고 생각했던 펩에 대한 원한과 적의이기도 했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펩을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며 그의 엄격한 태도를 조롱했다. 로셀은 전임자가 손에 넣었던 6관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회장으로서 로셀이 처음으로 내린 큰 결정 뒤 2명의 거리는 한층 더 멀어졌다. 경리상의 문제로 라포르타를 고소할지 어떨지를 소시오에게 묻는 선거를 강행한 것이다. 즉 소시오에게 최종결정을 맡기며 교묘하게 과거를 잘라내고자 했다. 이것이 펩의 안녕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4년 동안 펩은 선수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다소 마찰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선수들은 흔들림 없이 냉정하게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은 얻은 타이틀의 숫자에 취해서 선수의 능력만으로 세계 최고가 되었다고 과신하게 되었다. 큰 경기에서만 동기부여를 했고 극한의 땅에서의 경기와 피치 컨디션이 최악이 되는 2월의 원정 등 불리한 경기를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변명을 찾았다. 이제 막 계약한 선수도 신뢰에 답하지 않았다.


어느 날 펩이 말했다.

선수들의 눈동자에 광채가 없어진다면 팀을 떠날 때다


그리고 2012년 초 실제로 몇몇 선수들의 눈동자에서 광채가 사라졌다. 바르셀로나 거리에는 피케,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니엘 알베스를 잘라내고 팀을 재건하고자 했으나 로셀이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펩은 사임한다라며 그럴 듯한 소문이 돌았다. 펩이 말했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내가 회장에게 사의를 전달한 것은 201110월이었다. 그 이후 내 생각은 1번도 변함이 없었다. 팀을 재건하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떠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켰기 때문에 그만둔다, 단지 그것뿐. 그 시즌의 진실은 3-4-3으로 레알 마드리드에게, 3-7-0으로 클럽월드컵에서, 이전에는 없었을 정도의 좋은 플레이를 하면서 승리했던 것, 4개의 타이틀을 손에 넣었던 것뿐. 우리들은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하지만 나는 한계였고 팀에게 줄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것이고 그 이상은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다


뉴욕에서의 10월의 어느 날, 에스테아르테는 매주 있는 연례행사인 펩과의 인터넷 회담에서준비됐어. 바이에른을 선택했어!라는 선언을 들었다. 펩과 에스티아르테는 타고난 스포츠맨이면서 올림픽챔피언이지만 두 사람 간에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멋진 관계로 상호보완이 가능할 것이다. 펩은 피치 위에서 예상치 못한 패스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뛰어난 축구선수다. 상대 골키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뛰면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팀 전체를 움직여왔다. 움직이기 전에 항상 다음 동작을 생각한다. 팀의 우위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동료들을 가장 효과적인 포지션에 배치시킨다. 펩의 성공은 팀을 체계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에스티아르테는 물속의 마라도나였다. 유일무이한 수구선수였고 경기에서 골을 넣는 멋진 재능을 갖고 있었다. 7년 연속으로(1986~1992) 세계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모든 타이틀과 메달을 얻었고, 훈장도 받았다. 에어리어 안의 킬러, 만족을 모르는 골잡이였다. 스페인 대표로 578경기에 출장해서 1561골을 넣었고, 올림픽에 6번 출전했다. 개인기로 경기를 구하는 물속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렸다. 올림픽과 다른 모든 대회에서 4대회 연속 득점왕에 빛났지만 스페인 대표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하지만 펩과 교제하기 시작하고 나서 그는 달라졌다. 계속해서 개인주의자적인 방식으로 뛴다면 개인기록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금메달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친 뒤 그는 플레이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자기비판 하거나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동 포지션으로 물러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비를 했다. 그 결과 팀 동료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에스티아르테는 득점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팀은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이어진 2년 뒤의 월드컵에서도 우승했다. 그의 헌신이 팀 전체의 성공을 가져다준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4년 동안과 지금의 바이에른에서 에스티아르테는 계속해서 펩의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집단으로서의 필연성과 개인의 정당한 욕망과의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할 것인지, 누구보다도 숙지하고 있는 골게터인 것이다. 마라도나 및 마이클 조단이었을 때와 비교해서 그의 성격은 신중해졌다. 분위기의 낌새를 알아채고 직감을 구사한다.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팀을 빛나게 한다. 마치 축구의 미드필더가 공격수를 위해 패스를 보내는 것처럼. 펩은 말했다.


감독은 매우 고독해. 옆에 성실한 사람이 필요해. 잘 되지 않을 때와 고독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줬으면 해. 마넬(에스티아르테)은 항상 그랬지. 나를 위해 많은 구체적인 일들을 해줬고, 나를 불쾌하게 만들거나 지치게 하는 것을 처리해줘. 마넬이야말로 자신에게 의문을 갖거나 좋지 않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야. 물론 많은 좋은 순간도 함께 나눴어. 그는 최고의 스포츠맨이고 특별한 직감을 갖고 있어. 종목은 다르지만 최종적으로 스페셜리스트라는 것은 매우 비슷한 것이라 생각해. 마넬은 가야할지, 가지 말아야할지 직감으로 감지하지. 팀이 조화와 신중함을 잃거나, 라커룸이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거나, 팀의 구속이 무너지거나……. 이것은 특별한 직감으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야. 마누엘은 그걸 갖고 있어. 그가 세계챔피언이었기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직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일류라고 생각해. 일반 스포츠 선수는 기계적인 판단밖에 내릴 수 없거든. 진짜 훌륭한 사람은 플러스의 직감을 갖고 돋보이게 되지.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친구야. 물속의 마라도나는 사소한 일에도 성의를 갖고 하니까. 쭉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


201210월 뉴욕. 마리아, 마리우스, 발렌티나 3명의 아이들은 여전히 영어 공부와 학교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고생했다. 카탈루냐인 감독에게는 축구클럽의 제안이 담긴 전화가 빈번하게 걸려왔다. 시티의 치키 베기리스타인은 집요했다. 아브라모비치는 허풍을 떨었다. 독일인들은 성실했다. 큰 약속은 아무것도 없었다.


준비됐어. 바이에른을 선택했어!


지금 바로 계약서에 사인한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플레이에 대해 담화를 갖는 것, 개런티 교섭을 위한 장소를 갖는다는 의미였다. 회네스의 답변은 빨랐다.걱정하지 마, 돈은 찾았어. 바이에른은 은행에서 빌리지 않고 펩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먼저 필요한 투자를 결정하고 출자자에게 그것을 전했다. 이번 투자대상은 펩이다.


축구에 관한 이야기는 간단한 것이었다. , 회네스, 루메니게는 즉석에서 이해했다. 마리오 고메스, 루이스 구스타부, 티모슈크에 대한 논의도 했다. 바이에른이 토니 크로스의 방출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11월에는 뉴욕에 있는 펩의 자택에서 회네스 회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계약서를 교환했고 1월에 공표되었다. TV방송국 스카이 이탈리아가 다음 바이에른 감독은 펩이라고 폭로해버렸기 때문에 클럽은 공표를 2013116일로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바이에른은 하인케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펩과의 계약을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디어의 정보를 통해 알게 된 하인케스는 유쾌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이 시점에서 아직 그가 트레블을 달성하며 전설의 지위를 확립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4. 어째서……어째서? - 2013625일 뮌헨

 

우리는 새로운 바이에른 구상을 3단계로 나눴다


과거 바이에른과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였던 파울 브라이트너에게 진행 중인 개혁에 대한 말을 들었다.


바이에른은 같은 시스템으로 몇 십 년 동안 뛰어왔다. 팔 체르나이가 감독이었던 70년대 후반에 선수였던 칼(루메니게)과 나는 4-1-4-1, 4-2-4 혹은 4-4-2라고 불리는 바이에른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그것이 얼마 전인 2008년까지 계속되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는 항상 같은 전술이었다. 시스템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고 21세기에는 과거의 유산에 불과했다


바이에른은 변해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루이스 반 할이 오기까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듯했다.


현대축구는 바르셀로나와 같은 스타일만이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움직였고 포지션을 바꿔서 볼을 순환시켰다. 바르셀로나는 리듬을 바꿔 볼을 소유했고 마치 농구와 같은 축구를 시작했다. 90분 동안 5시간이나 볼을 소유할 기세였다(웃음).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입되기까지 10년 정도는 이러한 형태가 계속될 것이다. 시대에 뒤처진 우리들의 축구도 반 할이 현대풍으로 바꿔줬다. 적임이었다고 생각한다. 바이에른의 시스템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브라이트너의 말에 의하면 반 할은 개혁의 첫 단계를 맡은 것이 된다.


볼을 소유하는 팀이 되면서 시스템도 변했다. 클래식한 플레이 대신 포지션 플레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포지션은 고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각자가 영향을 미치는 사이클을 갖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클에서 나오는 일도, 나올 의무도 없었다. 어쨌든 볼을 갖고, 패스를 하면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볼 점유율은 80%까지 올라갔지만 움직임이 적은데다 느리다. 알리안츠 아레나에서는 30분이 지나면 모두가 하품을 했다. 71천명의 관중들은 순간, 순간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채버렸다. 정확한 플레이였지만 예상하는 게 너무 쉬웠다


그리고 유프 하인케스가 구상의 제2단계를 지휘했다.


반 할의 시스템을 유지했지만 단순하게 볼을 소유하는 것, 이라는 사고방식을 바꿨다. 스피드와 리듬의 변화가 필요했다. 확립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2년차 전반기(8~12)에는 수정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 많았지만 후반기에는 최고의 승점을 얻었다. 2월에는 이미 원했던 스피드와 리듬을 갖췄고 시즌 당초와는 전혀 다른 팀이 되었다


그리고 제3단계의 리더로 선택된 사람이 왔다. 펩 과르디올라다.


하인케스는 아직 고정된 포지션으로 플레이했지만 스피드와 골을 넣는다는 목적은 이뤄냈다. 앞으로는 포지션체인지, 꾸준한 볼의 순환, 물이 흐르는 듯한 끊임없는 선수들의 움직임, 멈추지 않는 플레이를 펩과 함께 할 것이다. 바로 2, 3년 전의 매력적인 바르셀로나의 축구로 이어지는 길의 도중에 우리들이 있는 것이다


브라이트너의 이야기는 70년대 말부터 펩이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한 현재까지 이어진다. 바이에른은 오트마 히츠펠트에서 펩까지 10년 동안 7명이나 되는 감독을 교체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교체의 대부분은 안정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브라이트너의 이야기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독일축구 잡지 키커의 기자 무니르 지투니는 과르디올라의 오퍼레이션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 요인으로 감정과 지성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펩은 계획을 갖고 있다. 선수는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기자도 역시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가 새로운 방식에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떨지가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펩 역시 적응해야만 한다. 이곳의 선수들은 이미 매우 높은 퀼리티를 갖고 있다. 선수와 감독, 양쪽의 타협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것은 감정과 지성의 문제가 될 것이다……」


독일 안에서 가장 축구가 번창한 뮌헨은 맥주와 의견을 분담하기 위해 모든 기자들, 블로그, 트위터, 클럽의 팬들이 그룹을 만들어 모인다. #tpmuc라는 이름이 붙은 그룹의 1명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슈테펜 니마이야는 멤버의 한명이자 바이에른의 모든 경기를 쫓아다니는 열광적인 서포터다. 펩의 취임이 확정되기 전부터 펩이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20125, 우리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와 컵 대회 모든 것을 잃었다. 지금의 바이에른은 완벽한 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에른의 장점은 항상 전진과 향상을 계속하고자하는 점이다. 하인케스가 그것을 실행했다. 이번에는 펩의 차례다. 하인케스의 유산이 특별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동기부여는 남아 있다. 무리뉴의 첼시에게 UEFA 슈퍼컵에서 승리하는 것, 챔피언스리그를 2년 연속으로 차지하는 것, 재능 넘치는 선수들을 좀 더 성장시키는 것……아직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 펩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축구의 세계에서는 성공 이후의 변화는 높은 위험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 성공이 크면 클수록 위험도 높다. 니마이야는 한층 더 열띤 말을 이어갔다.


펩은 작년까지 세계 최고의 감독이었기 때문에 적합하다. 펩이 감독으로서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바이에른은 갖고 있다. 상호 전진을 위한 결단이 필요했고 이 계약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독일축구, 바이에른, , 그리고 펩. 모두에게 있어 윈-윈의 결정이다. 펩은 바르셀로나에서 배운 완벽한 축구를 응용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다른 지역의 축구와 지성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바이에른을 분석할 시간은 많았을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죄다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팀에 다소의 변화를 추가해서 바이에른을 보다 좋은 팀으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 3년이 지나면 펩은 다른 국가로 갈 것이고, 다른 스타일을 찾을지도 모른다


독일 리그(DFL)의 최고책임자 크리스티안 세퍼트도 이렇게 말했다.


독일 전역이 펩을 꿈꾼다. 이 계약으로 질투와 초조함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분데스리가 전체에 좋은 영향과 큰 매력이 될 것이다, 라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파울 브라이트너를 등장시켜보자.


Q: 바이에른의 이사들은 바이에른에서 기능했던 것을 바꿀 용기를 필요로 했던 것인지?

A:이걸 말하지 않으면 현실을 무시해버리는 일이 되겠지. 2012-13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유프 하인케스는 회네스와 루메니게에게이번이 마지막 해다라고 선언했다. 그 때 바이에른의 경영진은 펩을 생각했다. 바이에른이 트레블을 이뤄내기 훨씬 전부터. 3월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팀은 좋은 플레이를 했고 모든 타이틀을 얻은 감독을 교체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안게 되었다. 그 이유는 20126월에 하인케스가 이미 사임한다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클럽은 펩을 감독으로 초빙하기 위한 위험을 전혀 모험이라 생각하지 않았고,새로운 감독은 펩으로 해야 한다라고 전원이 납득했다


Q: 바이에른이 얼마 전의 바르셀로나처럼, 또는 70년대의 바이에른처럼 유럽을 지배할 수 있을까?

A:매년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얻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5년 동안은 유럽 축구의 리더가 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팀이 보다 좋아지기 위해 매년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얻을 필요는 없다. 5년 전의 바르셀로나처럼 바이에른은 축구로 성공을 거둘 것이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Q: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클럽이 성공을 위해 요한 크루이프의 아들()과 계약한 것은 역설이 아닌지?

A:역설이라고 할 것도 없다. 우리는 네덜란드 축구에 큰 경의를 갖고 있다. 크루이프는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위대한 인물이고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훌륭한 감독이었다


베켄바우어와 크루이프. 바이에른과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독일과 네덜란드의 상징. 1974년 뮌헨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에서도 맞붙었다. 그들의 후계자들이 지금 유럽축구의 패권을 쥐려는 같은 목적을 위해 뭉쳤다. 길고 끊이지 않는 축구의 역사 속에서 과르디올라는 체스판 위에서 붉은 말과 함께 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브라이트너의 말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Q: 왜 펩 과르디올라였던 것인지?

A:펩 이외에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 바이에른은어떻게 하면 펩이 와줄까?만을 계획했다. 그것이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유일한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일서를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운게 외국어 표현(특히 고유명사)이나 사람들의 이름인데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경우 혹은 문맥이 매끄럽지않은 경우 지적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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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봐도 이해가 안가는게 1단계 2단계 3단계론인데, 어떻게 2단계가 3단계보다 진보된 것 같을까요. 3단계를 완벽하게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떠나면 뭐가 되는걸까요 대체
  • 오오 이런 번역은 언제나 감사할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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