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전차군단의 총사령관' 미하엘 발락을 기억하며

데브뤼네2012.10.05 11:07조회 수 2964댓글 1

    • 글자 크기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이번엔 '전차군단의 총사령관' 미하엘 발락이다. 최근 공식석상을 통해 그라운드와의 작별을 선언한 그는 레버쿠젠에서의 3년을 끝으로 길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됐다. 올해로 서른 여섯, 97년 프로무대에 데뷔한지 꼬박 15년만이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로 꼭 언급이 되어야할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이 미하엘 발락이라 생각한다. 전성기 시절 중원에서의 독보적인 무게감은 물론, 공수 양면에 걸쳐 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였던 그는 암흑의 터널을 지나고 있던 독일 대표팀의 한 줄기 빛이었으며, 세계축구계의 보배였다. 혹자는 굵직한 대회에서 숱하게 준우승의 아픔을 맛본 그를 두고 '천상 2인자'라 깎아내리곤 하나, 그만큼 눈부신 우승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도 동시대에 몇 없을 뿐더러 준우승으로 점철된 아픈 경력 역시도 그만큼 성대한 결승무대를 많이 밟아본 실력파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 덕에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 무대를 호령할 수 있었으며, 첼시는 꺼져가는 무리뉴 세대의 숨통에 소중한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그가 포함된 세대의 독일 대표팀이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국제대회에서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주장직을 훌륭히 수행하며 팀의 단결을 이끈 발락의 공이 컸다. 대표팀과 클럽을 막론하고 이처럼 꾸준한 경기력을 구가하며 '클래스'를 유지했던 선수도 몇 없다.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할 자격이 충분한 기라성과 같은 선수였다.

 

하지만 필드를 누비는 발락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다. 희비가 교차하는 굴곡진 경력을 남기고 이제는 역사의 일부분이 된 미하엘 발락을 추억하며 동독 출신의 어린 소년이 세계적인 미드필더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경력을 되짚어본다.

 

 

 

 

 

1976년 동독의 괴를리츠 지방에서 태어난 발락은 작센주에 위치한 켐니처FC에 입단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의 U21 대표팀에 발탁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97년 카이저슬라우텐으로 이적해 2년간 46경기 4골을 기록했고, 97/98시즌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맛봤다. 젊은 나이에 원숙한 기량을 선보이며 독일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그는 마침내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며, 99년 4월 28일 스코틀랜드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렀다. 발락의 축구인생 2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또한 카이저슬라우텐을 떠나 새로운 팀으로 둥지을 옮기게 되었다. 발락의 몸값으로 480만 유로를 제시한 바이어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은 비록 리그를 제패한 적은 없었으나 나름 독일 무대에 잔뼈가 굵은 클럽이었고, 00/01시즌 전관왕을 목표로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며 분데스리가와 포칼컵, 챔피언스리그 3개 대회 우승을 정조준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레버쿠젠은 이 시즌 3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기록하는 '트리플 러너업'의 아픈 역사를 새로 썼고, 발락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 지단의 그 유명한 발리슈팅이 레버쿠젠의 심장을 찣어놓는 역사적인 광경을 옆에서 멍하니 지켜봐야만했다. 이후 쭉 그의 발목을 붙잡게되는 메이저 대회 준우승의 악령이 처음 고개를 내민 순간이었다.

 

결승 무대의 악몽은 그의 첫 월드컵으로 이어졌다. 발락은 한일 월드컵 본선 6경기에서 3골 4도움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치며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에 시달리던 독일 대표팀의 결승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미국과 대한민국을 상대로한 토너먼트 일전에선 연속으로 결승골을 뽑아내며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허나 안타깝게도 발락은 경고누적 탓에 결승전에는 출전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팀의 간판 스타를 잃은 독일은 호나우두의 연속골에 무너지며 브라질에게 월드컵 우승을 내줬고, 그는 조국이 무너지는 가슴아픈 광경을 벤치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또한번의 준우승이었다.

 
 

 

 

하지만 발락은 멈추지 않았다. 또 한번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레버쿠젠에서 3시즌간 79경기 27골을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우뚝선 그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클럽인 바이에른 뮌헨의 러브콜을 받았다. 뮌헨은 발락의 이적료로 1290만 유로의 거금을 제시해 영입을 확정지었는데, 이는 레버쿠젠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카이저슬라우텐에 지불했던 금액의 약 3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동안 발락이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대한 증거인 셈이었다. 동독의 작은 클럽에서 경력을 시작했던 그는 그렇게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뮌헨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발락은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3회씩이나 수상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로 우뚝섰다. 그의 맹활약에 힘입은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역시도 분데스리가와 포칼컵을 3차례씩이나 제패하며 독보적인 독일 무대의 강호임을 재확인했다. 한편 새롭게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든 클린스만 감독이 2004년, 그를 독일의 주장으로 임명하면서 발락은 최초의 '동독 출신 독일 대표팀 주장'이 됐다. 그야말로 겹경사,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않는 영광스러운 나날이었다. 문자 그대로 미하엘 발락의 성공시대인 셈이었다.

 

문제는 독일 월드컵이었다. 자국에서 열리는 성대한 축제인만큼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새로운 팀으로 변모한 독일 대표팀의 각오도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팀의 주장으로서 자국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시험대에 오르게된 발락의 임무 역시도 막중했다. 폐막 후 독일이 받아든 성적표는 3위였다. 준결승전에서 천적 이탈리아에게 무릎을 꿇으며 결승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 대표팀은 대회 기간 내내 선보인 인상적인 행보를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밝혔다는 평가를 받았고, 역시 그 중심엔 주장 미하엘 발락이 있었다. 비록 우승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기분 좋은 마무리였던 셈이다.

 

 

 

 

희망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독일 월드컵을 뒤로한채, 발락은 또 한번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새로운 무대에 도전장을 던질 적기를 맞이한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였다. 로만 구단주의 부임 이후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순식간에 유럽 정상급 클럽으로 도약한 첼시는 발락이 이루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을 이루기에 더할 것 없이 좋은 새 보금자리였다.

 

시작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처음 밟는 잉글랜드 무대가 익숙치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부상 탓에 필드를 비우는 일이 잦아지며 그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검증된 세계적인 스타라는 이유로 팀의 버팀목인 테리  등과 동등한 금전적 대우를 받고있었기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그를 향한 팬들의 시선도 고울리 만무했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할 시련이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발락은 서서히 몸상태를 끌어올리며 첼시의 중원에 무게감을 더했고, 2008년 램파드의 공백을 틈타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내며 프리미어리그 적응을 끝마쳤다. 쭉 상승곡선을 그리던 발락은 리버풀을 상대로한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해내는 눈부신 공을 세웠고, 첼시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발락을 외면했다. 첼시는 승부차기 끝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유럽의 패권을 내줬고, 부지런히 필드를 누비며 헌신했던 발락의 도전은 또한번 아픈 결말만을 남겼다. 그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칼링컵에서도 각각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에게 무릎을 꿇으며 우승컵을 내준 까닭에 그 아픔은 더했다. 시즌이 끝난 뒤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유로 대회에도 그를 위한 우승컵은 없었다. 독일은 결승전에서 스페인에게 석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발락은 또한번 메이저대회 제패의 꿈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이후 발락은 첼시의 완전한 주전으로 중원에 소중한 경험과 노련미를 불어넣으며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수비적인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며 램파드와의 공존을 이뤄냈고, 첼시가 구사하는 '힘의 축구'의 주축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0809시즌 또 한번 주심의 오심 행진 속에 빅이어 트로피를 놓치며 쓴 잔을 들이켜야 했지만, 0910시즌 팀 창단이래 최초의 더블(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제패)을 견인하며 건재한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첼시는 더이상 발락을 필요로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주급체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드진이 나이가 많고 고액의 주급을 수령하는 발락을 최우선 정리대상으로 분류한 까닭이었다. 발락은 스스로 주급을 삭감할 의사를 표명했으나 팀의 의사는 완고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FA컵 결승에서 보아텡에게 얻은 부상이 발목을 잡으며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남아공 월드컵 출전 티켓을 놓쳤다.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를 연달아 제패하고 전차군단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며 수년간 고수해왔던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이었다.

 

첼시와의 관계를 마무리한 발락은 친정팀인 레버쿠젠 복귀를 택했다. 곧바로 큰 부상을 당하며 황혼기에 먹구름이 꼈으나, 그답게 훌훌 털고 일어나 팀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2012년 레버쿠젠과의 계약이 종료되며 발락은 무적 상태에 놓이게 됐다. 미국리그, 호주리그 진출설이 나돌았으나 그의 최종선택은 그라운드와의 미련없는 작별이었다. 매사에 자존심이 강하고 강단이 있었던 그다운 선택이었다.

 

이제 더이상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미하엘 발락은 없다. 끝내 굴곡이 심했던 그의 경력은 국가대항전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채 미완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 그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발락이 흘려야했던 땀과 각고의 노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정상의 자리를 향해 도전했고, 또 근접했으며, 숱한 실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발락의 집념. 결코 꺾이지 않았던 그의 집념이야말로 2인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그의 경력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줄, 미하엘 발락만이 가질 수 있는 값진 타이틀이 아닐까?

 

 

 

 

http://blog.naver.com/bianconeri93/10149050159

 

사진출처 - 구글

    • 글자 크기
바이언, 17일(내일) 외데가르드 영입발표 (by 마테우스옹) [Bild] 새로운 HSV (by 메롱나라)

댓글 달기

댓글 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948 심심해서 뽑아본 브라질 역대 베스트13 먼나라독일 2016.07.14 2984
41947 DFB 새로운 어시스트 코치 슈나이더 - 안토니오 뤼디거는 젊은 시절 재롬 보아텡과 같다.8 원수사뇰 2014.10.10 2984
41946 슈바인스타이거:해외에서 뛸 준비되었다7 Azar 2008.11.12 2981
41945 허허..고메즈...--;;13 피터팬 2014.09.04 2978
41944 그레고리악이 선정한 분데스리가 포지션별 역대 탑102 Raute 2015.03.21 2977
41943 [오피셜] 박주영 아스날 이적 완료17 내일로 2011.08.30 2977
41942 분데스리가 단신4 꾸락♡근영 2005.10.14 2976
41941 JTBC3 분데스리가 이번주 중계진20 순수소년 2015.08.11 2972
41940 1983년, 파울 브라이트너의 은퇴경기1 Raute 2015.05.22 2969
41939 분데스리가 챔피언스 리그 출전팀 겨울 이적시장 예상6 원수사뇰 2014.12.03 2969
41938 바이언, 17일(내일) 외데가르드 영입발표12 마테우스옹 2014.12.17 2964
'전차군단의 총사령관' 미하엘 발락을 기억하며1 데브뤼네 2012.10.05 2964
41936 [Bild] 새로운 HSV1 메롱나라 2014.05.24 2961
41935 바이에른, 토니와 클로제 동시 영입23 올리칸 2007.05.02 2961
41934 독일 U-19 팀 유로 U-19 우승 주축 선수 소개 2편2 원수사뇰 2014.08.05 2958
41933 분데스리가 공홈 - 분데스리가 올 시즌 영건 Top 5!7 원수사뇰 2014.02.12 2956
41932 U-21 유로를 위하여 에릭 둠, 마티아스 긴터, 스코드란 무스타피를 다시 U-21 팀으로 내릴 흐루베쉬2 원수사뇰 2014.09.13 2955
41931 2016 프리츠 발터상 수상자들6 메롱나라 2016.08.08 2954
41930 2014/2015시즌 전반기 볼프스부르크 선수들 활약상 정리(스압주의)5 pedagogist 2015.01.06 2946
41929 보루시아 묀헨글랏드바흐 - 타우란트 쟈카, 플로리안 카인츠8 원수사뇰 2015.12.31 2944
첨부 (0)

copyright(c) BUNDESMANIA.com ALL Rights Reserved.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