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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플레이 모델 간의 격돌, -바이언vs글라드바흐 복기-

안방불패2015.03.28 20:25조회 수 4011추천 수 4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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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단일 시즌 역대 최고급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노장 유프 하인케스, 감독 초년에 축구사에 길이 남을 왕조를 건설한 젊은 펩 과르디올라. 커리어 상으로는 큰 접점이 없는 이들에게 교집합이 생겼다. 각자의 감독직 은퇴 및 복귀와 더불어서 말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메가톤급 클럽, 바이언을 놓고 하는 이야기이다.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며 준우승 1회를 비롯, 그 마지막 시즌에는 독일 최초의 트레블을 이룩한 하인케스의 바이언을 물려받은 과르디올라가 전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비록 축구관의 차이로 인한 가치평가가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과르디올라가 축구계에 커다란 혁신을 가져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람의 미드필더 기용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팀 메커니즘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는 곱씹어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첫 시즌 리그와 포칼 우승을 동시에 거두며 더블을 이룩한 펩 바이언의 두 번째 시즌은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경기력과 더불어 빅이어 탈환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아져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8강 대진을 앞둔 현 시점에서 챔스 우승 배당률 1위는 바이언이다. 그러던 와중 후반기 들어 흥미로운 사건이 두 가지 발생하였다. 바로 對볼프스부르크 전, 對묀센글라드바흐 전이다.

후반기 첫 경기였던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의 대패와 지난 라운드 홈 경기장인 알리안츠에서 글라드바흐에게 0:2 영패를 당했다. 전자의 경우, 교통사고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동료선수 말란다에 대한 추모 분위기 때문인지 볼프스부르크의 정신력은 남달랐다. 물론 이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이 날 보여준 볼프스부르크의 플레이 방식은 그들이 항상 선보여온 것이 아니라 어느 팀의 플레이 모델을 그 한 경기에 한하여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팀이 글라드바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 시즌 바이언을 만나 1승 1무 2득점 0실점이라는 우위를 거둔 글라드바흐와의 지난 라운드를 복기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두 팀의 선발라인업]

양 팀의 선발라인업은 상기한 이미지와 같다. 바이언의 경우, 리베리는 가벼운 부상이 있어 이 날 출전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손꼽히는 알라바는 이번 시즌 중앙미드필더로 출전하는 빈도가 잦은데, 이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바이언의 키워드를 꼽아보자면 '변화'일 것이고, 필드 내적인 진형 변화의 가장 핵심적인 선수는 바로 알라바일 것이다. 이는 그의 뛰어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역량에 기인한다.

글라드바흐의 경우, 전형적인 1.4.4.2 포진이다. 바르사로 떠난 테어 슈테겐의 대체자로서 바젤에서 영입한 얀 좀머는 글라드바흐의 골문을 잘 지켜주고 있다. 호펜하임에서 영입한 파비안 존슨은 본래 라이트백이지만, 이적 후에는 레프트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그의 원래 포지션이 주로 우측이었다보니, 왼쪽에서 중앙으로 쇄도하는 움직임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후술하겠다. 아욱스부르크에서 영입한 안드레 한은 헤어만과 더불어 번갈아가며 라이트윙어로 출전했는데, 이 날은 크루제 대신 하파엘의 파트너로 낙점되었다. 이는 역습상황에서 스피드를 좀 더 살려보려는 복안이었을 것이다.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 스타일은 익히 알려진 바, 한국에서 많이 중계해주는 편은 아닌 글라드바흐의 파브레 감독이 어떤 축구를 펼치는지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07~09의 맨유를 떠올려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두줄 수비'로 상대방이 파고들 공간을 차단하고, 다시 회복한 볼을 후방에서부터 빠른 스피드로 측면에 넘긴다. 그 후 선수들의 적절한 공간 배분을 통해 패스 선택지를 넓힌 효과적인 역습을 구사하는 것이 바로 이 팀의 플레이 모델이다. 특별히 수비형 미드필더를 기용하지 않고 캐릭-스콜스 라인을 포백 근처에 두고 수-공 전환시 이들로 하여금 빠른 패스를 뿌리게 하는 방식은 샤카-크라머 라인도 동일하다. 패스 연계 능력 자체는 전자보다 못하지만, 젊은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한 기동력적인 측면은 더 역동적이다. 실제로 이 날 크라머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상술한 보루시아 묀센글라드바흐의 플레이 모델, 그리고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를 보고 일반적인 팬들은 '역습 위주의 팀'이라 규정하곤 한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발언이 있다. 포르투를 이끌고 있는 로페테기 감독의 발언이다.


"나는 역습 위주의 축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역습이란 곧 상대의 뒷공간을 활용한 공격을 의미하는데, 상대의 뒷공간을 활용하지 않는 팀이 어디에 있는가?"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펩을 상대로 하는 감독들이 대개 역습축구로 승부를 보려 한다는 세간의 통념은 상대의 뒷공간을 활용해야만 하는 축구의 본질적인 특성 중 하나를 간과한 것이다. 정교한 공격 작업을 보여주는 펩의 플레이 모델을 상대로 점유에 우위를 가져가긴 어려우니, 그나마 몇 번 찾아오는 공격 찬스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본의이든 타의이든 간에, 라인을 올리게 하여 뒷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선 이쪽에서 라인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점을 방지하겠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이후 역습을 전개하는 방식은 감독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파브레 감독의 그것은 상술한대로다. 결국 상대 뒷공간을 어떻게 공략할까 고심한 끝에 자기 입맛에 맞는 현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바이언이나 바르사 같은 유형의 팀을 상대로 일단 승점 1점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해당 경기에 한하여 자신들의 기존 플레이 모델에서 일시적으로 맞춤 수비전술을 보여주는 팀도 있지만, 글라드바흐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 꾸준히 이러한 플레이 모델을 구축해왔고, 또 선보여왔기에 바이언을 상대로 위력을 뽐낼 수 있던 것이다. 즉, 이 날 경기는 다소 상반되는 플레이 모델을 보이는 두 감독 간의 정면 충돌이었으며, 그 승자는 파브레 감독이었다.

이제 경기를 구체적으로 복기해보자면, 경기 양상은 예상대로였다. 글라드바흐는 강력한 두줄 수비를 토대로 하여 바이언이 공간을 파고들 기회를 미연에 방지하였다. 이를 어찌 파훼하느냐가 바이언에게 주어진 과제였을텐데, 결국 가장 효과적인 것은 크로스이다. 크로스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혹자는 바르사 시절, 메시의 마법과도 같은 플레이를 통해 중앙을 분쇄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중앙지향적이던 그 시절에 비해 크로스에 치중하는 펩에게 한계가 도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펩은 측면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감독이다. 메시의 괴물성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중앙에서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던 것도 아우베스 등을 활용한 측면 작업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바이언에는 메시같은 선수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크로스의 비중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펩 바이언의 가장 확실한 무기는 로벤이다.]


펩 바이언의 측면에서 가장 압도적인 선수는 아르옌 로벤일 수 밖에 없다. 하인케스 바이언의 마지막 시즌 리베리-크로스-뮬러로 구성된 2선 라인에 밀려 벤치에서 칼을 갈던 로벤은 크로스가 시즌 막판 부상을 당하자 다시 레귤러로 복귀하게 되고, 한 단계 올라선 선수가 되며 위르겐 클롭과 친구들의 도전을 격파하는 일등공신이 된다. 이 날 경기에서도 글라드바흐의 수비를 상대로 전반전 동안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로벤이었다. 




오른쪽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레반도프스키한테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장면이다. 레비의 터치 미스로 놓치긴 했지만, 끝내 베르낫의 슈팅으로까지 연결되었다. 동료들은 로벤이 공을 잡으면 그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보내고, 효과적인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다.




이처럼 위협적인 헤더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때 크로스를 올린 슈바인슈타이거에게 패스를 주었던 선수가 베르낫인데, 베르낫이 공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로벤이 오른쪽을 공략하여 크로스를 올렸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반대편 괴체도 훌륭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선수 특성 상 이러한 역할을 로벤이나 리베리만이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리베리가 출전하지 못할 경우 로벤에게 공격이 편중되는 경향이 짙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중요한 로벤이 24분 경에 얀츠케와 부딪히며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바이언 공격의 역동적인 측면이 많이 감퇴하게 되었다. 복부 근육 부상으로 인해 6주 정도의 결장이 불가피하다는 소식인데, 바이언 입장으로선 걱정이 될 것이다. 교체로 뮬러가 투입되고 양 측면은 괴체-뮬러가 ,이후에는 둘이 위치를 바꾸지만, 위치하게 된다. 두 선수 모두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지만, 성향은 다를지언정 바이언에서 보여주는 그 템포 자체는 비슷한 선수들이다. 글라드바흐의 입장으로선 차라리 비슷한 템포를 지닌 선수들을 막는 게 한결 수월하다.

글라드바흐의 견고한 블록으로 인해 빠른 측면전환을 통한 상대수비 흔들기를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결국 박스 내에 선수들이 어떤 분포로 자리잡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따라 크로스의 질이 결정되며, 측면에서 중앙으로 쇄도하며 슛을 시도하더라도 세컨드볼을 따낼 확률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 공격이 실패했을 때, 볼을 획득한 상대팀이 수-공 전환을 하는 그 순간 즉각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15분 경에 나온 훌륭한 압박 장면이다. 본디 수비수인 중앙미드필더 알라바의 전방 압박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높은 전술적 이해도를 레프트백, 중앙미드필더, 백3의 왼쪽 센터백으로서 골고루 보여주니 정말 대단한 선수가 아닐 수 없다.




앞서 바이언의 올 시즌 키워드는 '변화'이며, 그걸 필드 내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가 알라바라고 언급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경기를 보면 펩이 알라바에게 말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위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인데, 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몸짓과 이후 나타난 바이언의 공격작업을 보면 일정 부분 유추가 가능하다.




오른쪽 중앙미드필더인 알라바가 우측을 공략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그 지역에서 반댓발인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장면이다. 세가지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첫째, 반댓발 크로스는 밀접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기에 용이하다. 실제로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감독이었던 프란델리가 체르치를 써먹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코스타리카의 수비조직력을 뚫기엔 미봉책에 불과하였기에 실패하였지만 말이다. 

둘째, 이는 필시 로벤과의 연계를 주문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로벤은 중앙으로 쇄도하며 일명 '매크로 슛'을 때리는데 능한 선수이고, 그 슛의 위력이 올라가려면 그를 견제할 상대수비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만약 알라바가 상기한 이미지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면 그 자체로 상대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벤에게 상대수비가 집중한다면 역으로 로벤을 미끼로 활용하면 될 노릇이다. 

셋째, 그런데 로벤이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빠지면서 이러한 계획에 차질이 오게 된다. 뮬러는 성향이 다른 선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괴체와 뮬러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전까지 로벤이 맡았던 크로스 몫을 알라바가 더 지게 되었다. 경기가 잘 안 풀리게 된다.




펩의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글라드바흐의 철퇴 한 방이 들어간다. 약속된 패턴이 아니었나 싶은데, 스로인 상황에서 시작된 순간적인 역습이었다. 얀츠케가 하파엘에게 던지고 하파엘이 다시 리턴패스를 주는 시점에 헤어만이 오른쪽 뒷공간으로 뛰어들어간다. 이 때 바이언 선수들은 하파엘의 리턴패스를 빼앗기 위해 3명의 선수가 헤어만에게 시선을 돌린 상황이다. 안드레 한은 적절한 위치에 서 있으며 상대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결국 헤어만은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편하게 돌진하여 얀츠케의 롱패스를 받는다.

이후 헤어만이 낮은 크로스를 박스로 보내는데, 박스를 향하는 글라드바흐 선수들의 움직임이 흥미롭다. 레프트윙인 파비안 존슨은 박스 중앙에 위치하면서 상대 수비 둘을 묶어두었다. 세컨드 스트라이커 하파엘은 존슨의 뒤에 위치해있는데, 존슨 덕분에 하파엘은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해둔 상태이다. 이를 인식한, 아니 훈련을 통해 체화한 헤어만은 하파엘에게 크로스를 올리고 골로 연결된다. 비록 노이어의 실책성 플레이이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난 글라드바흐의 역습은 너무나도 완성도가 높은 패턴이었다. 혹여나 하파엘이 견제를 받아 슛을 시도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하여 그의 왼쪽으로 돌아나가는 안드레 한의 움직임 역시 훌륭하다.



[다른 각도에서 글라드바흐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목하자]

역습 상황시 선수들이 공간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그걸 잘하면 선수들의 패스 판단이 얼마나 수월해지는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결국 상대 선수들의 마크를 잘 떼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Unmark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파비안 존슨의 움직임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보자. 

파비안 존슨의 움직임이 매우 계산적이었다는 것은 스로인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는데, 왼쪽에 위치해있을 그가 스로인 상황에 오른쪽까지 온다. 물론 스로인 이후 볼 소유를 돕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 바이언의 라이트백인 하피냐의 마크를 떼어놓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본다. 실제로 하피냐는 그를 견제하지 않았고 실점 장면 직전에야 뒤늦게 그를 쫓아가는 모양새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스페인에서는 El Desmarque de fijacion이라 한다. Unmark와 통하는 표현인데, 쉽게 말해서 오프더볼에서 자신의 마크 선수에게서 벗어나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전술적 움직임이다. 파비안 존슨은 이를 매우 잘해내주었고, 그의 중앙지향성은 이에 기인한다.

하피냐가 제대로 농락당한 장면인데, 여기서 던지는 의문부호는 바로 '과연 람이었다면?' 일 수 밖에 없다. 현재 바이언이 정말 강한 팀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변수가 많고 강자들만이 살아남는 향후 챔스 일정에서 바이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이라면 바로 이쪽, 하피냐일 것이다. 람은 미드필더로서 월드클래스급 선수지만, 그로 인해 출전하는 하피냐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 이는 바이언의 빅이어 탈환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실점을 하게 되고 밀리는 형국이 지속되자, 펩은 알라바를 오른쪽에서 왼쪽 중앙미드필더로 바꾼다. 본래 레프트백인만큼, 그 위치에서 좀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시에 베르낫과 하피냐를 상당히 전진시킨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대의 변화에 글라드바흐는 어찌 대응할 것인가. 변화에 변화로 대응할 것가? 그렇지 않다. 실점하지 않는 이상, 상대의 이러한 변화는 외려 파브레 감독이 원하던 바이다. 이는 미생을 통해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창호의 명언으로 풀이될 수 있는 상황이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국면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바둑만큼 상대적이라는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게임도 없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대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축구 역시 매우 상대적인 스포츠이다. 전반기 대결도 그러하고, 그러한 점에서 두 팀간의 상성은 상당히 오묘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바이언에게 득이 된 장면도 존재한다.




알라바가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시도하기도 하며




넓게 전진한 하피냐와 괴체로부터 볼을 넘겨받은 알라바가 전진한 슈바인슈타이거와 원투패스를 주고받고 슛을 시도한 장면도 있다. 하지만 역시 변화로 인한 실이 더 컸다.




샤카가 볼을 끊고, 크라머가 하파엘에게, 다시 하파엘이 빠른 측면전환으로 헤어만에게 내주는 장면이다. 베르낫이 상당히 전진해 있었기 때문에 헤어만의 앞에는 공간이 뻥 뚫려있는 상태다.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알라바는 더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 이 때 반대쪽을 보면 파비안 존슨 역시 하피냐를 저만치 두고 편하게 쇄도하고 있다. 만일 헤어만이 보아텡과 바트슈투버가 동시에 견하고 있는 안드레 한이 아니라, 존슨에게 긴 크로스를 보냈더라면 바이언의 추가실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양상이 전후반 내내 반복되니, 일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관련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두 팀의 뛴 거리에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60분까지 두 팀이 뛴 거리는 6km나 차이가 난다. 바이언은 77km, 글라드바흐는 83km를 뛰었다. 반면에 점유율은 7대3이다. 이는 체력적으로 바이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두줄수비를 갖추고 공간을 차단하는 글라드바흐를 상대로 바이언이 전방에서 패스를 돌릴 수 밖에 없었음을 의미하고, 글라드바흐는 공-수, 수-공 전환을 오가며 열심히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볼 점유는 대개 바이언이 하고 있었지만, 경기 주도권은 글라드바흐가 쥐고 있었으며, 볼의 위협성도 글라드바흐의 볼일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가능하다.


이런 저런 요인들과 맞물려 센터백으로부터의 롱패스도 효과를 보게 된다.




센터백 도밍게스가 안드레 한에게 롱패스를 시도하고, 안드레 한은 특유의 기동력 덕택에 무리없이 넘겨 받고 왼쪽에서부터 공격을 시도하게 된다. 이는 하피냐가 전진으로 인하 공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빠른 경기속도와 미들라인을 건너뛰는 공격작업이 반복되면, 알론소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월드클래스급 패스 전개 능력과 경기 흐름을 읽고 미리 위치를 선점하는 수비는 일품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느린 발은 큰 소용이 없다.

그래서 펩은 60분에 알론소를 빼고 로데를 투입한다. 슈바인슈타이거를 알론소 자리로 내리고, 알라바와 로데로 하여금 중원의 역동성을 살려 상대를 흔들겠다는 복안일 것이다. 




그럼에도 마찬가지 패턴, 안드레 한을 향한 롱볼이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나마 슈바인슈타이거였기에 안드레 한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알론소였다면 안드레 한을 쫓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펩은 최후의 카드로 괴체를 빼고 람을 투입한다. 펩이 직접 그의 축구지능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을 정도로 똑똑한 람으로 하여금 공격 연결고리로서 디테일을 살리도록 주문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알라바의 역할도 좀 바뀐다. 물론 로데 투입 이후에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긴 했지만, 베르낫과 하피냐를 더욱 더 전진시키고, 알라바는 레프트백과 미드필더를 겸하는 다소 복합적인 포지셔닝을 하게 된다. 레반도프스키와 뮬러는 투톱을 이룬다.




그 효과가 나타난 장면이다. 하피냐가 크로스를 올리고 베르낫이 슛을 때리는 장면인데, 바운드되면서 좀머의 선방에 막힌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이 결실을 맺기 전에 추가실점을 허용하게 된다.




알라바의 다소 변태적인 포지션, 바로 그 지점을 크라머가 찢어버린 장면이다. 본래 공격은 유동적이기에 대형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수비의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비는 전적으로 대형에 의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했기 때문에 펩이 시도한 변화 자체는 납득할 수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저러한 정돈되지 않은 대형은 글라드바흐 측으로선 득이 되었다. 자충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알라바가 너무 많은 부담을 지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결국 경기 흐름은 글라드바흐가 주도하는 양상이 지속되었고, 




이처럼 앞서 이야기한 글라드바흐의 공격 패턴이 경기 막판까지 꾸준히 나왔다. 파비안 존슨이 중앙에서부터 측면으로 빠지며 Unmark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파브레 감독은 여유롭게 크루제, 토르강 등의 교체자원도 활용하며 이들의 체력적 여유를 이용한 넓은 역습도 시원스럽게 시도하게 만들었다. 88분 경에는 헤어만을 빼고 노드바이트까지 투입하면서 수비를 강화하고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보루시아 묀센글라드바흐의 완승인 것이다.

비슷한 양상이 전반기 경기에서도 벌어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분데스리가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바이언을 상대할 팀들은 글라드바흐를 많이 참고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팀들이 파브레 감독의 그것만큼 잘해낼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묀센글라트바흐는 바이언을 상대하기 위한 임기응변으로서 이러한 플레이 모델을 구축한 것이 아니라, 파브레 감독의 철학 하에 상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닦아온 메인 플랜이기에 잘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방향성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는 알레띠와 바이언과의 대결을 축구팬으로서 소망하는 바이다. 아쉽게도 8강에선 만나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두 팀 모두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여 맞붙길 바란다.




펩 과르디올라가 21세기 세계 축구계에 던진 화두는 대단한 것이다. 그가 선보이는 수는 세계축구계의 뛰어난 감독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를 발전시키거나, 무너트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한 때의 혁명가로 남느냐, 혹은 퍼거슨처럼 시대와 시대를 잇는 특별한 감독이 될 지의 여부는 자기 쇄신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이날 보루시아 묀센글라트바흐와의 대결은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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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 어우 움짤의 구성을 보니 만드는데 시간 되게 많이 걸리셨을 거 같네요. 지난시즌에 바이언이 약점을 드러낸 게 이맘때였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궁금하네요. 올시즌에는 예방주사가 될 거라고 보고 있는데 로벤이 어정쩡하게 나오는 거면 모르겠는데 아예 아웃이 확정된 이상 새로운 판을 짜야할 거고(로벤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건 전반기부터 계속 나왔던 얘기이기도 할테니 일찌감치 대안을 구상은 해뒀겠죠), 그걸 테스트할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반면 다른 감독들이 펩의 새로운 전술을 해부할 시간적 여유는 없을 거 같거든요. 뭐 로벤 의존뿐만 아니라 슈바이니-알론소의 조합 문제도 있고, 리베리-하비-티아고 등 부상자들 돌아오면서 전술을 손봐야할 필요도 있곤 했으니까 펩 입장에선 마냥 부정적이기만 한 패배는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어차피 이 경기 져도 리그 우승하는 데는 전혀 지장 없고요.
  • Raute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19:55 댓글추천 0비추천 0
    사실 중원에서의 측면전환을 시도할 때 '의외성'을 부여해주는 선수가 바로 티아고였는데, 어쩌다 그리 유리몸이 되어서 ㅠㅠ 뭐 바이언에게 있어서 남은 시즌의 초점은 챔스에 맞춰져 있다고 봐야겠죠. 로페테기의 포르투와의 일전이 전술적으론 매우 흥미로운 대결이 되겠지만, 뭐 바이언으로선 수월한 상대라고 봐야겠죠. 목표가 우승이니만큼, 묀센글라트바흐와의 대결에서 얻어간 것도 많았겠죠. 기대됩니다.
  •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바이언이 대단한 팀이긴 하지만 묀헨도 못지 않네요. 내년 챔스가 더욱 기대됩니다. 크라머의 빈자리는.. 슈틴들도 좋은 선수이니 잘 메꿔주겠죠(무책임).
  • 불뱀술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19:57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슈틴들 영입한다는 소식은 접했었는데, 오피셜이 떴었군요. 좋은 영입인 것 같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검증된 자원이라는게 일단 안심이 되는군요. 슈미트 감독으로선 0이적료 1영입의 효과가... ㅋㅋ
  • 묀헨은 정말 묵직하게 조용하게 잘하는 팀...ㄷㄷㄷ
  • 마테우스옹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19:58 댓글추천 0비추천 0
    화끈한 면모도 있습니다. 세비야에게 화끈하게 털리고, 바이언을 화끈하게 이겨주는....ㅋㅋ
  • 글 잘봤습니다 움짤이 함께하니 이해가 빠르네요 ㅎㅎㅎㅎ
  • 아마나티디스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19:59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움짤제작하기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ㅎㅎ
  • 제가 써도 이 정도로는 절대 못 쓸 정도로 잘 쓰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귀뚜라기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3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추신으로 달은 축구팟캐스트도 시간나시면 한번 들어주세요~
  • 엄청난 글이네요 스페셜리포트로 갔으면합니다 ㄷㄷ
  • 불꽃싸다구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3 댓글추천 0비추천 0
    ㅎㅎ 분데스매니아를 시작한지 얼마안되어 시스템을 잘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ㅎㅎ
  • pedagogist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4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도르트문트와의 일전도 기대중입니다 ㅎㅎ
  • 엄청난 고퀄이네요. 감사합니다.
  • 원수사뇰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4 댓글추천 0비추천 0
    당케쉔입니다~
  • 좋은 글 정독하고 갑니다ㅎㅎㅎㅎ
  • Teuscher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4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 spin88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4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 좋은글 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 발리안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05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 추천드립니다. 정성스런 글 잘 봤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타 카페에 이 글 주소 링크 걸어도 될까요?
  • 홍춘이님께
    안방불패글쓴이
    2015.3.29 20:41 댓글추천 0비추천 0
    네, 출처만 밝혀주시면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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