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유명한 축구언론 플라카르는 참 다양한 선수랭킹을 만들었습니다. 역대 월드컵 최고의 선수, 그냥 역대 최고의 선수, 역대 최고의 베스트일레븐... 뭐 이런 것들 많이 만들었는데 1981년에는 70명의 기자들에게 자신의 역대 베스트11을 뽑아달라고 했죠. 국가별 인원수 차이는 있지만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포르투갈 이렇게 10개국 기자들이 참가했고 기자들의 소속언론도 편차는 있지만 제법 다양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언론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키커와 빌트, 벨트, WAZ, SZ, SID(독일 발롱도르 투표자가 SID 소속이었으나 피롱도르부터 키커 편집장이 투표) 소속 기자가 참여했고 잉글랜드에서는 타임스, 가디언, 더선, 데일리 메일, 텔레그라프 등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RAI,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 라 스탐파, 게린 스포르티보 등이 참여하고 스페인은 문도 데포르티보, 프랑스는 레.퀴프, 포르투갈은 아 볼라, 아르헨티나는 엘 그라피코 등이 참여하고... 하여간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습니다.
뭐 1981년 기준이니까 반바스텐, 호마리우, 호나우두, 지단 같은 인물들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1982년 월드컵의 빅3였던 지쿠-마라도나-루메니게가 소소히 보이겠거니 했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꽤 많이 있더군요. 이걸 처음 봤을 때는 최다 투표자인 베스트11만 보고 그때도 똑같네 하고 넘겼는데 얼마 전에 세부적인 득표를 보고 나서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뭐 국내 축구팬덤이 언어의 한계로 갈라파고스에 가깝다보니 소수의 축덕들이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해서 왜곡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걸 떠나서 해외의 축구언론들이나 팬포럼에서 논하는 것과도 상당한 괴리가 있었거든요. 이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식의 변화, 즉 더 높은 평가를 받던 과거의 인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가고 반대로 과거에는 낮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재조명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아래의 얘기는 이 1981년 자료 기준입니다.
1. 레프 야신의 위상이 생각보다 낮다
물론 야신은 꽤 큰 차이로 골키퍼 1위를 차지했습니다. 70명 중 33명이 야신을 선택했거든요. 그러나 이 수치는 역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상징성 때문에 절대 넘어설 수 없을 벽이라는 현재의 인식을 생각해봤을 때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기록입니다. 가령 수비수 본좌라고 여겨지는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60명의 지지를 받았고 그 베켄바우어를 배제한 기자들도 독일축구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잉글랜드-이탈리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차이가 꽤 많이 나죠? 경쟁이 훨씬 치열했던 공격수 쪽에서도 야신보다 높은 지지를 받은 인물들이 많습니다. 2000년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가진 지안루이지 부폰조차 야신의 상징성은 넘지 못할 것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그 야신을 본 사람들이 야신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놓지 않았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2. 그런데 골키퍼 넘버2에 디노 조프는 거론조차 안 된다
현대에 이뤄지는 투표 보면 야신은 언터처블이고 넘버2는 중구난방이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는 인물이 이탈리아의 조프입니다. 당장 부폰이 조프를 넘어섰니 마니 하는 얘기가 많을 정도로 대단한 레전드고요. 그런데 그 조프의 이름이 '아예' 안보입니다. 심지어 이탈리아 기자들도 안 뽑았는데 이탈리아 기자 10명 중 4명은 잉글랜드의 고든 뱅크스, 4명은 스페인의 히카르도 사모라를 뽑았으며 단 2명만이 야신을 골랐고, 남은 2명은 브라질의 지우마르와 체코의 프란티섹 플라니치카를 뽑았습니다. 물론 뱅크와 사모라도 넘버2를 경합하는 인물이고 보통 여기에 후대의 페터 슈마이헬과 부폰, 그리고 이케르 카시야스까지 넣고 넘버2를 뽑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조프가 이탈리아 언론들에게까지 외면받은 건 대단히 놀라웠습니다. 골키퍼 순위는 야신(33)-사모라(14)-뱅크스(12)-지우마르(2)에 그외에는 1표씩 받았습니다. 뭐 거의 자국 레전드 뽑더군요.
3.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라이트백 본좌가 맞나
위대한 1970 셀레상의 주장이자 그 유명한 골의 주인공인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라이트백의 본좌로 여겨지고 있고 엄청나게 좋은 커리어를 가진 후대의 카푸가 이 자리를 넘보는 걸로 많이들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14표에 그쳤으며 브라질 선배인 자우마 산투스가 받은 36표의 절반도 안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우마 산투스는 브라질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표를 쓸어담았으며, 브라질 내에서는 7:1로 일방적인 스코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996년에 있었던 브라질 위주의 투표에서는 자우마 산투스가 이겼다는데 이건 제가 자세히 모르겠네요.
4. 영국 최고의 선수는 조지 베스트가 아니었다
베스트에 대한 영국 언론의 애정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래서 영국쪽에서 뽑은 선수 순위랑 그 외의 국가에서 뽑은 순위 비교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 중 하나가 베스트의 위치고요. 북아일랜드인임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선수들보다 더 잉글랜드 언론에게 사랑받는 선수라는 게 참 재밌긴 한데 이 순위에서는 비참한 결과가 나옵니다. 7표에 그쳐서 동료인 바비 찰턴(20)과 선배 스탠리 매튜스(16)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고 그중 6표를 잉글랜드 언론이 줬습니다. 찰턴이 베스트보다 높아야 한다는 얘기는 은근 있습니다. 1999년에 있었던 세기말 평가에서 찰턴이 탑10에 자주 언급되기도 했었고요.
5.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vs 요한 크루이프
디 스테파노는 50표를 받아 전체 3위였고, 크루이프는 39표로 전체 5위였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이 1981년이면 크루이프가 미국에서 놀던 시절이고, 이후 네덜란드로 복귀해서 몇 년 더 뜁니다만 어쨌든 크루이프의 위대한 커리어는 다 완성된 후거든요. 이럴 경우 현역버프로 인기는 인기대로 있고 이미 말년이니까 커리어는 다 쌓아놨으니 이득을 봐야할 거 같은데도 디 스테파노를 못 넘습니다. 어차피 베스트11이란 게 다 그렇듯 포메이션 무시하고 공격수들까지도 미드필더로 때려넣는 거 보면 포지션 문제는 아니고요. 그런데 이런 평가가 나중에는 바뀌어서 우리가 아는 '펠마크베디'로 정착하게 됩니다. 당장 1981년에 포르투갈 언론 아 볼라의 기자 2명은 크루이프를 안 뽑았습니다만 1999년에 아 볼라는 크루이프를 3위, 디 스테파노를 5위로 발표했죠.
6. 가힌샤의 엄청난 득표
디 스테파노와 크루이프 사이의 4위가 47표를 받은 가힌샤였습니다. 이는 23표를 받은 푸슈카시 페렌츠의 2배가 넘는 수치였고 잉글랜드를 제외하면 모든 나라에서 상위권에 들었죠. 그러나 요새 평가 나오는 거 보면 가힌샤는 푸슈카시보다 뒤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고 탑10도 간당간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탑10에 들어가는 것도 대체로 기자단 선정이고 팬투표로 뽑으면 뭐 처참하죠.
7. 에우제비우의 저조한 득표
에우제비우는 전체 11표를 받았는데 그중 8표가 포르투갈이고 나머지 3표는 모두 독일에서 나왔습니다. 즉 넓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건데... 요새는 1960년대 벤피카에 대한 조명이 이뤄지면서 에우제비우가 유럽 본좌였고 남미의 펠레, 유럽의 에우제비우라고 라이벌 구도를 많이 부각시키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결과는 쉽게 와닿지 않네요. 보통 에우제비우 > 게르트 뮐러라고 하는데(저도 여기에 동의하는 편이고) 둘이 겨우 1표 차이 나요. 그나마 뮐러는 독일 말고도 다른 나라들이 1표씩 던져줘서 10표인 거고요.
8. 다양하게 언급되는 1950년대의 선수들
요즘에 와서 1950년대 선수는 거의 거론이 안 됩니다. 푸슈카시가 무적의 헝가리를 이끌었다더라 아니면 서독이 베른의 기적을 만들었는데 그때 주장이 프리츠 발터라더라... 아니면 뭐 1958년 월드컵 우승할 때 펠레가 아니라 지지가 골든볼이었다더라...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 개개인이 언급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언급되는 것도 군나르 노르달이나 콕치시 산도르처럼 골기록이 대단해서 가시적으로 뛰어난 인물이라는 게 보이는 케이스고요. 그런데 이 투표에는 깨알같이 소수의 득표를 받은 인물이 많습니다. 매직 마자르의 일원이던 보지크 요제프,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드필더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울브스의 주장 빌리 라이트, 월드컵 우승의 주역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웨일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존 찰스 등 요새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 선수들 많이 나오더군요. 물론 1940년대, 더 거슬러서 1910년대까지 가는 투표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아르헨티나 국뽕이 좀 크고요.
9. 마라도나의 대단함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보낸 선수 중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게 7표의 마라도나입니다. 마리뉴처럼 한창 뛰던 선수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20대 후반의 나이였고 마라도나는 갓 스물을 넘긴 나이였으니 차이가 있죠. 그런데도 지쿠나 루메니게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물론 마라도나가 유럽으로 건너오기 전에 이미 남미 최고의 선수로 여겨지기는 했습니다만 이뤄놓은 업적 면에서 차이가 있다보니 실력과는 별개로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좀 의외더군요. 지쿠-마라도나 라이벌리를 언급할 때 남미에서는 둘이 엇비슷하거나 지쿠가 앞섰고 유럽에서 뒤집어졌다는 얘기가 많거든요. 물론 이 투표 이후에 지쿠 커리어의 최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털컵 제패가 있었으니 연말에 투표를 했으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죠. 아 마라도나에게 표를 많이 준 건 아르헨티나가 아니고 이탈리아 언론들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가 좀 이질적으로 투표하는 편이었고요.
10. 펠레의 위대함
70명 중 69명이 펠레를 찍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프란코 페레라로 프란티섹 플라니치카, 자우마 산투스, 니우통 산투스, 에우세비오 카스틸리아노, 카를로 파롤라, 지투, 가힌샤, 지지, 게르트 뮐러, 디에고 마라도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를 찍었습니다. 펠레의 동료인 지투를 집어넣고 펠레를 빼놓은 건 무슨 센스인가 싶긴 한데 아무튼 이걸 제외한 나머지 69명은 모두 펠레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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