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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투펀치 보고 쓰는 1979년 분데스리가 주요 선수들

Raute2017.11.08 21:00조회 수 1237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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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sports.media.daum.net/v/20171106130512496?mccid=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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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투펀치 게스트로 차범근옹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써보는 1979년 기준 분데스리가 주요 선수들


바이언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 당시 독일축구를 상징하던 슈퍼스타로 이 시즌이 끝나고 유로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유럽 최고의 선수이자 남미의 마라도나-지쿠와 함께 세계 최고 레벨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분데스리가 본좌로 군림하다가 1984년에 세계 이적료 2위로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차범근옹이 은퇴할 때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등이 서있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라는 얘기를 하기도.

파울 브라이트너
- 독일축구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선수지만 이때는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꾼 뒤였습니다. 루메니게와 이른바 '브라이트니게' 조합으로 바이언을 이끌면서 분데스리가 최고의 미드필더로 명성을 떨쳤지만 1983년에 부상으로 은퇴합니다.

디터 회네스
- 바이언 회장 울리 회네스의 동생으로 유럽대항전에서 골을 많이 넣어서 Mr.Europacup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다만 형의 아성에는 못 미쳤고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지 못했던 클럽용 선수. 1987년에 바이언에서 은퇴.

이외에 유고슬라비아 미드필더 브란코 오블락과 베켄바우어의 파트너로 유명한 슈바르첸벡이 말년을 보내고 있었고 훗날 대표팀 주장을 맡는 아우겐탈러와 월드컵 주전으로 뛴 드레믈러도 있었습니다.


함부르크
케빈 키건
- 70년대 후반 분데스리가를 강타했던 특급 용병. 77/78시즌 함부르크가 충격적인 부진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반등에 성공해 대단한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79/80시즌이 끝나고 잉글랜드로 돌아갑니다.

만프레트 칼츠
- 70말 80초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측면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명성을 누렸습니다. 특히 크로스의 명인으로 흐루베쉬와의 콤비가 유명했습니다. 1989년에 프랑스행.

호어스트 흐루베쉬
- 이른바 '헤더괴물'. 20대 중반까지 재능을 낭비하다가 27세에 함부르크로 이적하면서 전성기를 맞습니다. 이 시즌이 끝나고 유로에서 맹활약하면서 주가가 크게 뛰었고 1983년에 분데스리가-유러피언컵 더블을 달성하고 벨기에행을 택합니다.

펠릭스 마가트
- 지금은 꼰대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손꼽히던 플레이메이커.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는 1983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중거리슛을 꽂아넣고 우승시킨 겁니다. 1986월드컵을 끝으로 은퇴.

이외에 유고슬라비아 수비수 부르얀, 비운의 재능 히에로니무스, 독일 국대에서 활약한 야콥스 등이 있습니다.


카이저슬라우턴
로니 헬스트룀
- 70년대 중후반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 그러나 선수 개인의 대단한 평가와는 별개로 커리어를 통틀어 단 하나의 우승도 없는 걸로 유명하고 그 때문인지 요새는 독일에서도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1984년 은퇴.

한스-페터 브리겔
- 육상선수 출신으로 '피지컬이 너무 뛰어나서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축구는 못할 것'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피지컬 괴물. 레프트백, 센터백, 미드필더 세 포지션에서 모두 일류였던 멀티플레이어로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84년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베로나의 우승에 기여하여 非분데스리가 선수로는 최초로 독일 올해의 선수를 수상합니다.


슈투트가르트
베른트 & 카를하인츠 푀르스터 형제
- 둘 다 수비수인데(형은 미드필더도 보던 멀티플레이어) 동생 카를하인츠는 유럽 최고의 스토퍼로 꼽혔습니다. 역대 독일 스토퍼로는 위르겐 콜러와 함께 가장 먼저 나올 정도. 1986년에 각각 은퇴/프랑스행.

한스-페터 뮐러
- 흔히 한지 뮐러라고 부르는 플레이메이커. 원투펀치 방송에서는 함부르크 레전드들 사이에서 이름이 튀어나와 그쪽 레전드인 걸로 오해할 수 있지만 슈투트가르트 토박이입니다. 꽤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지만 당초 기대치가 워낙 거대해서 기대만큼 크지 못한 선수로 유명합니다. 1982년 이탈리아 인테르로 이적.


쾰른
하랄트 슈마허
- 노이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독일 역대 골키퍼 넘버 3로 여겨졌던 선수. 80년대 독일 수문장은 슈마허로 고정이었으며 1987년 자서전 파문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언터처블이었습니다.

베른트 슈스터
- 2년차 유망주였지만 이때 포텐이 터졌고, 특히 시즌 끝나고 열린 유로1980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면서 발롱도르 2위에 오릅니다. 바로 그해 여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

디터 뮐러
- 레반도프스키 이전 마지막으로 분데스리가 30골 기록을 갖고 있던 선수. 엄청난 득점행진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서 중용받지 못했으며 A매치 12경기 9득점이라는 기묘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했다가 1982년에 프랑스로 떠났고 85년에 독일로 돌아와 말년은 독일에서 보냅니다.

몇 년 뒤 독일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성장하는 리트바르스키가 2년차로 주가 올리던 중이었고 나름 꽤 비싼 돈을 주고 데려왔던 잉글랜드 국가대표 우드콕도 있었습니다. 분데스리가 최초의 아시안 오쿠데라도 이때까지는 쾰른 소속.


도르트문트
만프레트 부르크스뮐러
-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 4위.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 못했지만 리그에서는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오가며 엄청난 득점기록을 남겼고 매우 롱런해서 1990년에 불혹의 나이로 은퇴했습니다.

이때 커리어 첫 풀시즌을 치른 이멜은 유로88 주전 골키퍼가 됩니다. 슈마허의 퇴출로 인한 어부지리이긴 했습니다만.


묀헨글랏드바흐
로타 마테우스
-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 이때가 데뷔시즌인데 1980년에 바로 대표팀 발탁됩니다. 1984년에 바이언 이적했다가 1987년에 세리에행.

카를 델하예
- 당시 리그에서 손꼽히던 윙이었습니다만... 시즌 끝나고 바이언으로 이적했다가 폭망하면서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비싼 백업선수로 전락하고 커리어도 망합니다.

이외에 당장은 존재감이 큰 건 아니었지만 이후 80년대 MG의 수비를 이끌었던 하네스와 브룬스가 있었습니다.


샬케
클라우스 피셔
-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 2위. 원조 게르트 뮐러의 후계자. 다만 승부조작에 연루되어서 국대 커리어가 꼬였고, 이 업보 때문인지 이후 여러가지로 운이 안 따라줘서 리그에서의 활약을 대외무대에서 충분히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바이시클킥의 달인으로도 유명합니다. 1988년에 불혹을 앞두고 은퇴.

뤼디거 아브람칙
- 독일 선수 중에서 최연소 월드컵 우승 기록을 갖고 있었던 기대주였고 리그 내에서 그럭저럭 손꼽히던 국대급 윙플레이어. 중간에 잠깐 터키 다녀오기도 했다가 1988년에 은퇴.

클라우스 피히텔
- 당시 이미 30대 중반의 노장이었는데 무려 10년 가까이 더 뜁니다. 덕분에 누적이라든지 나이 관련된 기록은 제법 갖고 있는 편.

그외에 국대급 선수로 꽤나 명성이 있던 롤프 뤼스만, 노어베르트 니크부어 등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위르겐 그라보프스키
- 프랑크푸르트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7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꾸준했던 선수 중 하나. 74월드컵에서 윙으로 우승을 했지만 이후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꿨고, 30대 중반에 월드컵 뛰어달라고 대표팀 복귀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본인이 거부해서 무산). 이 시즌 막판에 마테우스가 담궈버려서 은퇴합니다.

베른트 횔첸바인
- 그라보프스키와 세트로 그라비 & 홀츠로 묶이는 선수. 마찬가지로 윙과 미드필더를 번갈아봤으며 이쪽은 74/78 월드컵 둘 다 나갔습니다. 80/81시즌을 끝으로 미국 갔다가 은퇴.

브루노 페차이
- 당시 유럽 최고의 리베로 중 하나. 78월드컵 활약으로 큰 명성을 얻었고 분데스리가에 영입될 때 큰 파장을 몰고 왔던 선수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83년 차범근처럼 재정문제로 팀을 떠나 브레멘으로 갔으나 준우승만 여러 번 하고 87년에 고국 오스트리아로 복귀.

카를-하인츠 쾨벨
- 분데스리가 최다출장 기록 보유자. 국대에서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20년 가까이 꾸준히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했던 선수라서 나름대로 입지가 있었습니다. 1991년 은퇴.

이밖에 베른트 니켈, 로날트 보르허스 등이 국대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 니켈은 위 선수들과 함께 프랑크푸르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선수로 언급되곤 합니다.



대충 쾰른쯤부터 쓰다가 지겨워서 프랑크푸르트 아래로는 생략합니다. 위에 적어둔 클럽 중에서도 그냥 너무 길어질까봐 생략하거나 기타로 처리한 선수들이 있으니 이 선수들만 있는 게 아니라 그냥 1979년 기준으로 이런 선수들이 '커리어가 괜찮았다'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거 같네요(쾰른의 리트바르스키처럼 곧바로 포텐 터져서 탑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고).


남은 클럽 선수들 이름만 대충 쓰면 뒤셀도르프는 알로프스 형제, 뒤스부르크는 국대 주장이던 디츠, 1860에는 왕년의 스타 카펠만과 플로에, 위어딩겐에도 왕년의 스타 지기 헬트, 헤르타는 클레프, 브레멘은 부르덴스키와 라인더스, 브라운슈바이크는 포피보다 뭐 이런 선수 등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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