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퀴네가 HSV 선수들을 두고 Luschen이라는 거친 표현을 섞어 비난한 이후 최근 함부르크에서는 퀴네에 대한 비판적인 성토들이 많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퀴네에 대한 비판이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억눌려 있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그것들이 마침내 분출하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
참고로 Luschen은 사전에도 안 나와서 검색해봤는데, 우리말로 하면.. 글쎄요 찌끄러기 정도 느낌일까요? 여튼 굉장히 심한 말인 건 확실합니다.
여하튼 최근 라스 릭켄님께서 올리신 글도 있고 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솔직히 아주 주관적으로 저는 무엇이 HSV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단 하나의 답을 골라야 한다면 그게 퀴네라고 생각합니다.
퀴네가 HSV를 사업적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거나 뭐 그런 것보다도 그냥 퀴네 그 자신의 말과 행동이요.
솔직히 사업적으로 이용해먹으려고 했다고 욕하기에는 이제는 좀... 불쌍해요.
쏟아부은 돈이 수천만 유로에 달하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니 퀴네도 손해가 어마어마할 거예요. 돈은 돈대로 잃고 욕은 욕대로 먹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문제는 HSV를 후원하는 태도입니다. 보니까 몇 시즌 전에 단장으로 일했던 크로이처가 최근 인터뷰에서 퀴네와 함께 일하는 건 모욕적이었다고 얘기했더군요. 이 말 하나가 모든 걸 얘기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후원자에게 필요한 건 믿음과 인내입니다. 맨시티나 PSG 급으로 돈을 쏟아붓지 않는 한 유명한 선수 몇 명 데려온다고 바로 약팀이 강팀 되는 건 아니고, 클롭 같은 명장 데려오는 게 아닌 한 감독 갈아치운다고 성적이 A4 용지 뒤집듯 달라지기도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시행착오가 좀 있더라도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팀이 제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묵묵히 돕는 거죠. 이미 통일신라 때 어느 승려도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거라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후원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돈을 지원해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고, 바로 그 돈으로 이사진이 팀의 철학과 정책을 확립하고 단장이 그에 따라 선수들을 영입하면, 그 철학과 선수들을 데리고 감독이 전술과 전략을 짜서 팀을 이끄는 법입니다.
근데 퀴네 이 할아버지는 그런 인내가 없었습니다. 크로이처의 인터뷰를 보면 시즌 3라운드만에, 혹은 심지어 트레이닝 첫 날부터 감독에게 공개적인 비난을 쏟아냈다고 하죠?
그 밖에 우리가 아는 사례들을 더 거론해보자면, 멀쩡한 감독 두고 마가트를 감독으로 선임하겠다며 독단적으로 접촉했던 전력이 있고, 기존 이사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자기 오른팔을 러시아에 보내가며 신임 이사진을 내정해 놓았으며, 또 제멋대로 에이전트까지 고용해서 이사진에게 선수 영입할 때 와서 상의하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모 선수랑 재계약 안 하면 돈 끊겠다며 이사진을 협박하기도 했죠. 뭐 선수 영입 두고 얘 사와라, 쟤 사와라, 걔 팔아라 해댄 건 부지기수고요.
상황이 이런데 누가 이 팀에서 자기 철학을 지키며 정책을 꾸릴 수 있고, 소신껏 선수단을 관리할 수 있겠으며, 마음놓고 전술과 전략을 시험해볼 수 있고, 그 지시에 따라 기량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겠습니까?
걸핏하면 이사진을 구제불능이라고 소리쳐대고 팀을 찌끄레기라고 욕하고, 한때 팀을 먹여살린 선수에게 세기의 실패작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후원자 앞에서요.
퀴네가 이렇게 503의 순실이처럼 비선실세로 두 눈 우병우처럼 뜨고 남아 있는 한, HSV에서는 철학이 설 수 없을 것이며 비전이 설 수 없을 것이고, 그 자리에는 스트레스와 압박감, 그리고 주먹구구식의 행태만 남을 겁니다. 눈치와 야근과 회식만 남아 있는 어느 반도 국가의 직장 생활처럼요.
이제 그만 바로 옆에 라이프치히의 성공을 보고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퀴네보다도 더 많은 돈을 투자해 놓고도 나 23살 넘는 애들은 안 살 거야, 같은 걸 철학이라고 내세워도 박사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라고 내버려두는 에너지 드링킹 회사처럼요.
그 팀의 방식이 옳은가 그른가는 별론으로 해야겠지만, 후원이란 바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마땅히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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