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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독일 국가대표팀 수문장 계보도

Raute2014.12.17 22:19조회 수 4520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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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전은 저도 한스 야콥 정도밖에 잘 모르므로 패스. 괄호 안의 연도는 국가대표로서 뛴 시기가 아니라 넘버원이었던 시기입니다.




토니 투렉(1951-1954)

본명은 안톤 투렉이고 토니는 별명입니다. 베르티 포크츠의 원래 이름이 한스-후베르트 포크츠인 것처럼 이쪽도 본명을 별명이 대체해버린 셈. 1950년에 부활한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이 되었고 1954년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1957년에 선수생활을 마감합니다. 1919년생이라 선수생활의 황금기를 보내야 할 때 2차대전으로 커리어가 완전히 꼬였고, 메이저대회라고는 30대 중반에 54월드컵 한 번 뛴 게 전부입니다만 이 선수가 회자되는 건 역시 '베른의 기적'의 중심에 있던 선수라는 거겠죠. 결승전에서 치보르 졸탄에게 내준 2번째 실점은 백패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습니다만 이후 수차례 선방을 보여주면서 우승으로 이끕니다. 



특히 24분에 있었던 히데구티 난도르의 슈팅을 막아낸 건 헤어베르트 치머만의 "Turek, du bist ein Teufelskerl, Turek, du bist ein Fußballgott"(투렉, 넌 악마고, 투렉, 넌 축구의 신이다)라는 발언과 함께 전설이 되었죠. 비록 '베른의 기적'이 약물에 의한 것이었다는 연구가 나오고 사정없이 훼손되고 있지만 축구사는 물론이고 당대 독일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일대사건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약물이든 뭐든 정말 지독할 정도로 헝가리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경기였습니다. 골대만 2번 맞추고 투렉이 몸 던져 막아내고 독일 수비수들이 아슬아슬하게 걷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프리츠 헤어켄라트(1955-1958)
1950년대 중후반 독일 최고의 골키퍼입니다. 55/56시즌부터 키커가 선수 평가를 시작하는데 59/60시즌까지 9번의 평가 중(1958년에 1번만 했습니다) 6번이나 1위를 차지했고 최초로 WK를 받은 골키퍼이기도 합니다. 1954년 말 투렉으로부터 수문장 자리를 인계받은 뒤 1955년부터 독일의 수문장으로 쭉 활약하는데 중간에 귄터 사비츠키나 한스 틸코프스키가 기용되기도 하지만 최다출장은 헤어켄라트의 몫이었고, 투렉이 그랬던 것처럼 월드컵에서 골대를 지킨 뒤 친선경기를 1차례 치르고 물러납니다. 별명이 재밌는데 "fliegende Schulmeister", 영어로 써보면 "flying Schoolmaster"입니다. 에센에서 뛸 때 인근 초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했고, 은퇴한 뒤에는 아헨 공과대학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한스 틸코프스키(1960-1961, 1964-1966)
1960년대 독일을 대표하는 골키퍼입니다. 최초로 '독일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골키퍼이며, 도르트문트가 독일 최초로 유럽대회 우승트로피를 거머쥘 때의 수문장입니다. 1958년 헤어켄라트가 은퇴하고 제프 헤어베르거 감독은 이 선수 저 선수를 써봅니다. 그때 하인리히 크비아토프스키나 앞서 언급한 사비츠키, 그리고 틸코프스키 등이 시험받죠. 최종적으로 틸코프스키가 승리했고, 1961년까지 수문장 자리를 확고히 합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죠. 그런데 월드컵이 있던 1962년, 헤어베르거는 월드컵을 앞두고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여러 선수들을 테스트해보고 3:0으로 승리합니다. 결국 이탈리아와의 첫경기에서 등번호 1번 틸코프스키가 아니라 우루과이전에서 데뷔한 20살의 풋내기 볼프강 파리안이 주전으로 결정되었고 격노한 틸코프스키는 귀국을 요구하면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합니다. 비록 귀국하지는 못했지만 은퇴 선언은 유효해서 1963년까지 틸코프스키는 국가대표팀을 떠납니다.


헤어베르거와 화해한 뒤 1964년부터 클럽-국대 모두 전성기를 보내는데 올스타 골키퍼로 꼽히기도 하고, 1965년에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0:2로 패하지만 그 활약 덕분에 "Stern von Rio", 히우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후 1966년까지 순항하며 야콥의 골키퍼 최다 출장 기록을 갈아치웠고,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많은 찬사를 받으며 1967년을 끝으로 국가대표팀과 작별하게 됩니다. 위의 영상은 66년에 서독이 패하게 된 그 유명한 문제의 '웸블리 골'입니다.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WK 6회를 받았고 골키퍼 1위에 11차례나 이름을 올렸는데 보통 6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레프 야신, 고든 뱅크스, 그리고 틸코프스키를 꼽습니다.



볼프강 파리안(1962-1963)
짧고 굵게 틸코프스키의 자리를 빼앗았던 골키퍼. 20살의 나이로 헤어베르거의 눈에 들어 월드컵 주전까지 차지합니다. 그러나 분노한 틸코프스키가 각성한 뒤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시 자리를 내줘야했고, 하락세를 꽤 빨리 타서 틸코프스키가 물러났을 무렵에는 명함도 못 내밀어보고 그대로 밀려나고 맙니다. 덕분에 국대경력은 1964년까지 10경기 출장이 전부.



제프 마이어(1969-1978)

올리버 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독보적인 독일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바로 그 분입니다. 본명은 요제프 디터 마이어고 반사신경이 대단해서 이른바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로 불렸습니다(안칭은 마이어가 유년기를 보낸 지역입니다). 14년간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했으며 이견의 여지 없는 넘버원으로 지낸 게 10년입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골키퍼도 이렇게 오랫동안 나치오날엘프의 골문을 지키지는 못했죠. 교통사고로 은퇴하기 전까지 바이언에서 13시즌 연속 전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독일 올해의 선수' 를 3회나 수상해 골키퍼 최다 수상 기록을 갖고 있고, 2회 수상과 2연속 수상 역시 골키퍼 최초였습니다. 최초로 메이저대회에 여러번 출장한 골키퍼이기도 한데 보시다시피 선배들은 다들 월드컵 1번 나가고 그만두곤 했었던 데 반해 마이어는 3번의 월드컵과 2번의 유로에서 주전으로 나섰습니다(출장이 아니라 명단 포함이라면 30년대 골키퍼였던 야콥이 34년 출장, 38년 백업이기는 했습니다. 마이어도 이렇게 집계하면 66년을 포함해서 4번의 월드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죠).


키커 랑리스테 관련해서 좀 엽기적인 기록들이 있는데 IK 이상 받은 게 26번이고 K는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골키퍼 1위를 차지한 게 무려 22회며 은퇴하기 전까지 11회 연속 1위였습니다. WK는 6회인데...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덧붙여 독일에서 최초로 발롱도르 표를 받은 골키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이어도 처음부터 바로 주전이었던 건 아닙니다. 틸코프스키가 은퇴하고 나서 1967년부터 68년까지 2년에 걸쳐 브라운슈바이크의 호어스트 볼터와 경쟁하거든요. 물론 중요한 경기는 마이어가 더 자주 나오긴 했습니다만 월드컵 예선에서도 볼터가 나오는 등 출장경기수는 대등했었죠. 그러다가 69년부터 마이어가 치고 나가는 거고요.




하랄트 슈마허(1980-1986)

풀네임이 하랄트 안톤 슈마허인데 미들네임인 안톤에서 따온 토니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60년대 틸코프스키, 70년대 마이어가 있다면 80년대는 슈마허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죠. 사실 마이어는 은퇴하기 전까지 팔팔했었고 1978년에는 13경기 중 12경기, 1979년에도 9경기 중 4경기에 나오는 등 디터 부르덴스키, 노어베르트 니크부어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마이어가 갑작스레 은퇴하고 나서 자리를 차지한 건 부르덴스키도 니크부어도 아니라 뜬금없는 슈마허였죠. 슈마허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쾰른의 수문장이었지만 그렇게 돋보이는 편은 아니었는데 부르덴스키의 소속팀 브레멘이 막장 행보 끝에 강등당하고 니크부어가 국대에서 기회를 못 받는 동안 슈마허가 각성하면서 바로 주전을 차지한 거죠. 유로1980에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를 앞세운 유프 데어발의 서독이 우승을 차지했고 이때 장갑을 꼈던 슈마허는 이후 골문을 내주지 않습니다. 1986월드컵이 끝나고 물러나기 전까지 계속 골문을 지켰으며 86년에는 실버볼 수상자가 되기까지 합니다. 최초의 골키퍼 포디움이고, 이후 칸이 2002년에 골든볼을 차지하기 전까지 유일한 포디움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둘밖에 없고요(정작 86년의 최우수 골키퍼는 장-마리 파프였습니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요). 그런데 커리어의 오점이라고 해야할지 불명예라고 해야할지 논란이 되는 사건이 둘 있는데 하나는 1982월드컵 프랑스와의 4강전에서 있었던 패트릭 바티스통과의 충돌입니다.



이 충돌로 인해 바티스통은 치아가 부러지고 목과 척추를 다치는 중상을 입습니다. 그러나 슈마허는 퇴장은커녕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승부차기에서 2번이나 막아내며 팀을 결승전으로 이끕니다. 당연히 프랑스는 난리가 났고 국제적인 문제로 커졌죠. 슈마허는 이때 비난도 비난이거니와 바티스통이 깨어나지 못할까봐 정말 무서웠다고 합니다. 다행히 바티스통은 일어났고, 슈마허가 사과하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되긴 했습니다만 지금까지도 키퍼의 부적절한 플레이와 오심의 사례로 거론됩니다. 다른 하나는 자서전 출간인데 1987년에 낸 자서전이 문제가 되어서 오랜 기간 머물렀던 팀 쾰른에서 쫓겨나게 됐고, 국가대표 은퇴 번복을 원했으나 이 여파로 복귀하지 못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귀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80년대 중반까지 주전을 놓치지 않았고, 덕분에 부르덴스키나 함부르크에서 날아다니던 울리 슈타인은 친선경기에 나오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슈타인은 감독이던 프란츠 베켄바우어와의 불화 문제도 있긴 했습니다만). 13회 연속 골키퍼 랭킹 1위를 기록했었고 9회의 WK는 골키퍼 역대 1위입니다.



아이케 이멜(1987-1988)
도르트문트와 슈투트가르트에서 오래도록 뛴 선수입니다만 나치오날엘프에서는 넘버원으로 단 2년밖에 뛰지 못했던 다소 비운의 골키퍼. 재밌는 게 처음 1군 소집된 게 19세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1부리그 주전자리를 꿰차 리그 최고의 수문장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꾸준히 정상급 골키퍼로 여겨졌는데도 빛을 못 보고 벤치만 달궜다는 거죠.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유로 4강까지 올라가고 전성기를 보내나 했는데... 보도 일그너의 등장과 역시 베켄바우어와의 불화로 인해 밀려나게 됩니다. 여담으로 슈투트가르트 역대 베스트11에서도 골키퍼 2위입니다. 



보도 일그너(1989-1994)
금발의 천재 골키퍼라는 굉장히 강렬한 캐릭터를 갖고 있죠. 23살의 나이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고 27살에 국가대표 은퇴 선언이라니 이 얼마나 특이한 커리어입니까. 일그너 때문에 5살이나 위인 안디 쾨프케는 한참이나 백업으로 있어야 했고 바이언의 주장이던 라이몬트 아우만 역시 백업에 그쳐야했죠. 레알에서 뛴 걸로도 유명한데 일그너에게서 주전 자리를 빼앗은 게 바로 이케르 카시야스입니다. 커리어가 짧아서 아쉽다는 평을 자주 듣는 선수이긴 한데 키커의 평은 꽤나 짭니다. WK 1번에 독일에서 뛸 때 1위를 차지한 것도 3번밖에 안 됩니다. 레알에서 IK를 꾸준히 받긴 했지만 명성을 생각해보면 의외죠.



안드레아스 쾨프케(1995-1998)
역시나 이름 때문에 안디 쾨프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비슷한 예로 안드레아스 묄러가 있죠. 일그너에게 밀려 백업으로 있다가 1994월드컵이 끝나고 일그너가 은퇴한 뒤부터 주전자리를 차지합니다. 사실 1992년부터 93년까지도 거의 대등하게 출장하긴 했는데 정작 유로와 월드컵은 모두 일그너가 주전으로 뛰었으니 백업은 백업인 거죠. 그러나 대신 쾨프케는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후배에게 고스란히 고통을 전달하는데 그게 바로 올리버 칸. 칸은 쾨프케 덕분에 서른이 넘어서야 첫 메이저대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선배들처럼 10회씩 1위 먹고 이런 건 아니지만 WK를 6회나 받고 거의 매시즌 IK 이상은 기록합니다.



올리버 칸(1999-2004)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2002월드컵 보신 분들은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칸이 얼마나 대단한 괴물이었는지. 칸에게 불운이 있다면 하나가 98/99 시즌의 악몽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필 선배가 일그너랑 쾨프케라는 거죠. 칸 커리어의 약점이 국대 메이저 타이틀의 부재와 국대 넘버원으로서 보낸 기간이 짧다는 건데 칸이 90년대 초중반부터 계속 주전이었으면 평가가 훨씬 올라갔을 겁니다. 아니면 레만이 각성하지 못해서 칸이 00년대 중후반까지 계속 해먹었다거나... WK를 8번이나 받았으며 2년 연속 발롱도르 포디움에 오른 유일한 골키퍼입니다. 쾨프케와는 말년에 자기가 물러날 때까지 해먹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옌스 레만(2006-2008)
사실 좀 애매한 감이 있는 게 1999년을 칸이 아니라 레만으로 넣을까 했었습니다. 99년 컨페드컵은 칸이 낙마해서 대신 레만이 뛰었고, 그 영향으로 99년만큼은 레만이 더 많이 뛰었거든요. 그러나 칸의 시대로 보는 게 지배적이며 실제로 칸이 없어서 레만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냥 레만은 이렇게 분류했습니다. 2005년부터 칸과 레만의 바톤 터치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완연히 레만의 자리가 됐는데 레만 입장에서는 커리어의 황혼을 아름답게 보낸 것이고, 칸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못하던 동년배가 자기 말년의 영광을 뺏어간 셈이죠. 물론 레만이 잘했으니까(커리어 유일의 WK가 월드컵 끝나고 받은 거죠) 칸 입장에서도 그냥 아쉬움에 그칠 수밖에 없겠지만요. 만년 2인자가 멋지게 1인자로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누엘 노이어(2010-현재)
드디어 나왔습니다. 사실 노이어가 이렇게 거물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레만 은퇴 직후에는 로베르트 엔케와 레네 아들러가 굳건했으니까요. 엔케의 비극과 아들러의 부상 덕분에 다소 어부지리로 1인자가 되었지만 그 뒤 노이어는 계속 발전하면서 세계 넘버1이 되었습니다. 요새 '우리는 메날두의 시대에 살고 있다'란 말이 종종 나오는데 골키퍼에 한해서는 '우리는 부폰-카시야스의 시대를 지나 노이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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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 마이어는 교통사고만 안났으면 대체 얼마를 더 연속으로 뛰었을지가 궁금함

    그렇게 되면 위상도 한참 더 올라갔을텐데...
  • Dernier님께
    Raute글쓴이
    2014.12.18 00:20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마 디노 조프 정도는 뛰지 않았을까 싶은데(사실 지금 기록도 국대만 놓고 보면 조프랑 별 차이가 안 나지만) 그랬으면 칸에게 확실히 우위를 점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 노이어! 앞으로 10년은 부동의 최강으로 군림하길 바랍니다 ㅎㅎ
    칸은 정말 역대급 포스가 흐르네요 ㅎㄷㄷ
  • 시테님께
    포스로는 저 분들 중에서 칸이 최고같네요...잡아먹을 듯한 기세 ㄷ
  • 시테님께
    Raute글쓴이
    2014.12.18 00:21 댓글추천 0비추천 0
    현역 때는 못생긴 고릴라라고 욕먹었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게 또 카리스마네요.
  • 아.. 울리 슈타인..ㅠㅠ 역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ㅠㅠ
    틸코프스키는 하필이면 그 후계자가 마이어라서 후대에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면이 좀 있죠..
  • 메롱나라님께
    Raute글쓴이
    2014.12.18 00:22 댓글추천 0비추천 0
    다른 인간도 아니고 카이저한테 막말하고 살아남는다는 게 가능할리가 없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요. 선수 시절에 클럽감독 골라오고 국가대표 명단에 개입했던 양반인데...
  • 훌륭한 골키퍼들이 줄줄이 참 많았군요...부러울 따름입니다
  • 함북광팬페닉스님께
    Raute글쓴이
    2014.12.18 00:25 댓글추천 0비추천 0
    멀리 갈 거 없이 바이덴펠러가 A매치 4경기라는 게 유머죠.
  • 활약 년도와 커리어들은 너무 오래 된 인물들이라 자료도 찾기 어려워 모르겠는데
    일단 첫 월드컵 출전이었던 34년과 다음 회 38년 월드컵 독일 골키퍼는 한스 야콥으로 기록되어 있다는것만 찾았네요!
  • 팀가이스트님께
    Raute글쓴이
    2014.12.18 00:39 댓글추천 0비추천 0
    38년에 야콥이 더 많이 나오긴 했는데 월드컵에 뛴 건 루돌프 라프틀이었어요. 이후 한스 클로트와 헬무트 얀이 주전이다가 전쟁 심각해지면서 나가리되었다고는 하는데... 참 자료 찾기 힘들더라고요.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찾아보는 그런 느낌.
  • 재밌게 잘 읽었씁니다! 칸은 진짜 숫사자같아요. ㅋㅋ
  • 비제, 티모, 아들러, 노이어 등 굵직한 골키퍼들 많았는데
    최후 승자는 노이어네요.
  • Forever No1님께
    아들러는 참...이제는 교체명단에도 보이지 않더군요...
  • 노이어 롱런하길 ㅠ
  • 2014.12.18 22:02 댓글추천 0비추천 0
    괴프케는 주목을 받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주목을 못받은 느낌이기도 하고, 아이러니한 선수죠. No.1 수문장으로 있던 기간도 상당히 짧은 편이구요. 저 정도의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한 게 고작 4년이라니 확실히 독일 골키퍼 계보는 대단합니다.
  • 나이를 보면 Illgner와 Kahn, Lehmann은 겨우 두 살 차밖에 안 납니다. 만일 Illgner가 장기집권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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